[매일춘추] 현대인의 사랑법

입력 2014-03-21 07:10:56

아내가 눈먼 얘기를 아시나요. 미국의 수잔 앤더슨이라는 여인이 수술 중 실명을 하게 된 사연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이 여인은 실명한 뒤에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이젠 당신이 알아서 출근해"라는 말을 들었다. 분노와 배신감에 이를 악물고 버스 길에 나서 출근을 한다. 출근이 익숙해질 무렵 하루는 수잔이 버스에 오르는데 운전기사가 "좋은 남편을 두셔서 행복하겠습니다"라며 말을 건넸다. 남편은 그동안 아내를 혼자 출근하게 한 뒤 뒷자리에서 항상 아내가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존재감은 바로 이처럼 누군가 등 뒤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함께라고 해서 굳이 손잡고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 없는 시선으로, 따뜻한 사랑과 애정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자리도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공동체적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세대를 살면서 아날로그의 서정이 한 번쯤 생각나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쓴 삐뚤어진 글씨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정성은 디지털 자판기로 쓴 편지보다 또 다른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함께하는 공동체적 체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저녁시간 아버지와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오늘 일어난 얘기를 나누며 찐 감자를 먹던 시절의 추억은 소설의 한 장면으로만 만날 수 있는 대목이 됐다. 안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휴대폰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고, 아이는 컴퓨터의 채팅 대화에 정신줄을 놓고, 초등학생 아이는 새로 개발된 휴대폰 게임놀이 다운로드를 위해 눈이 충혈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근원에 닿는 질문을 던져보면 '함께'라고 주저 없이 말했던 것이 고루한 옛날전통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의 뿌리로 더듬어 올라가면 이 모든 것들이 '전기'가 만들어준 환상이고 일시적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필자는 이 지구상에서 전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문명의 삶이라고 칭하는 현대인의 생활패턴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시인이라고 무시했던 이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모범답안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공동체적 체험이나 이를 통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 사랑은 없어도 살지만 휴대폰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는 세태가 현재의 주소다. 집은 없어도 살지만 차 없이는 살 수 없어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이다. 근원의 삶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고 즉각적인 현상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의 반영이다. '내가 죽고 나면 지구가 폭발하든, 사라지든 무슨 상관이 있어'라며 즉물적이고 몰시간적인 가치관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

우병철 365 정형외과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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