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우리집 고양이 '연탄이'

입력 2014-03-20 14:00:32

최근 이사를 앞두고 말썽 많은 고양이 '연탄이'를 데려가는 문제를 놓고 가족회의를 했다. 아내는 동물보호센터에 맡기자고 했고, 딸 서영이는 데리고 가자고 우겼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결국 다툼 끝에 동물보호센터에 맡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이사 10여 일을 앞두고 대반전이 일어났다. 연탄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맘에 들지 않거나 식구들이 보고 있지 않으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화분에 심어져 있는 꽃을 훼손하는가 하면 아무 데서나 실례(?)를 하는 등 온갖 저지레를 했던 연탄이가 '착한 고양이'가 된 것이다. "우리 말을 들었나 왜 이러지?" 아내는 너무나 달라진 연탄이를 보고는 동물보호센터에 맡길것이란 의견을 철회했다. 물론 서영이는 반겼다.

연탄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2년 전. 지인이 운영하는 펜션(성주군 수륜면)에 갔는데, 우아하고 보무도 당당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앞길을 가로막았다. 파란 눈과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아내와 서영이는 기다렸다는 듯 "어마~ 참 예쁜 고양이네" 하면서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서영이가 대뜸 "엄마, 이런 고양이 새끼 한 마리 키우는 게 어때?" 하고 제의했다. 마침 펜션에는 두 달쯤 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러나 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와, 갈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고양이 모두 볼품이 없었다. 주인은 "아마 아빠가 길고양이일 것"이라고 했다. 서영이는 "엄마 아빠, 그래도 새끼는 예쁘지. 한 마리 데리고 가자"며 조르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부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허락했다. 책임감도 기르고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입양하기로 했다. 갈색 털을 지닌 고양이가 더 예뻐 데리고 가기로 했으나 품 안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온 펜션을 뒤져가며 갈색 고양이를 찾던 중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고양이가 서영이 품에 덥석 안기는 것이 아닌가. 인연은 따로 있었다.

먼저 이름부터 지었다. 서영이가 '연탄'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연탄아, 연탄아" 하고 부르다 보니 친근감이 들어 그냥 연탄이로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 식구가 하나 늘자 생기가 돌았다. 웃음도 많아졌고 당연히 대화도 늘었다. 연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서영이다. 서영이가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연탄이는 구석에 숨어 있다가 번개같이 출입문 쪽으로 달려나가 반긴다. 서영이를 올려다보고는 '제발 나 안아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서영이는 기분이 좋으면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지만 내키지 않으면 그냥 걷어차 버린다. 그래도 연탄이는 서영이를 따른다.

나와 연탄이와 좋은 관계는 고양이 발끝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누군가 팔을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내 손인가 싶어 잡아보니 몽실하고 보드라운 연탄이 발이었다. 촉감이 좋았다. 작고 귀여운 아가 손 같았다. 녀석은 뒷다리로만 자신의 몸을 지탱한 채 몸을 길게 늘여서는 앞발을 들어 옆에서 내 팔을 툭툭 치고 있었다. '심심하니 놀아 달라, 맛있는 것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연탄이를 데리고 이사했다. 그런데 며칠간 동정을 살피던 연탄이가 돌변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소파를 물어뜯는 등 저지레를 하고 있었다. 예전의 연탄이로 돌아간 것이다. 아내는 "저놈의 고양이, 동물보호센터에 보내버리든지 해야지"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절대 안 보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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