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희귀질환 윌슨병 투병 심유정 양

입력 2014-03-19 07:10:37 수정 2019-04-08 10:45:38

"온종일 누워있는 몹쓸 병…꼼짝도 못해요"

"당장 100만원도 없어 아픈 딸 치료도 못 시키니 엄마 자격이 없습니다."

18세 소녀 심유정(가명) 양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엄마를 기다린다. 이맘때쯤 또래들은 새 학기를 맞고 친구들과 깔깔대며 뛰놀지만 유정이는 팔다리가 마비돼 TV를 보는 것이 전부다. TV 화면만 바라보던 시선은 저녁이 되면 엄마가 들어올 현관문으로 향한다.

엄마는 돌아오면 가장 먼저 화장실로 유정이를 데려간다. 온종일 화장실도 못 간 채 반갑다고 웃는 딸을 보면 엄마 이복남(46) 씨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모진 병에 걸렸나 싶어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어요. 딸이 평범한 여학생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밝고 명랑한 유정이에게 찾아온 윌슨병

유정이는 '윌슨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구리(Cu) 대사 이상으로 체내에 구리가 쌓이고, 이로 인해 근육마비, 언어장애, 신경질환 등 증상이 나타나는 대사성 간 질환이다. 유정이는 이 병 때문에 간 3분의 2가 손상됐고, 팔과 다리 근육이 마비돼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유정이는 사교성이 좋은 명랑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했고,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엄마는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잘 크는 딸이 고마웠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이는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우울해하다 친구들에게 욕설을 하고, 다시 돌아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중 3 겨울방학에는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몸을 떠는 증상까지 보이면서 병원을 찾게 됐다.

처음엔 엄마도, 병원도 정신적인 문제라 생각했다. 조울증 증상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6개월 동안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했다. 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고등학교 교복을 채 반년도 입지 못하고 휴학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뇌 사진을 찍어보니 유정이의 뇌에는 구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윌슨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저 사춘기를 남들보다 심하게 겪는다고 여겼죠. 보지도 듣지도 못한 병에 걸렸다는 말에도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홀로 누워 있는 하루 10시간

갑자기 찾아온 병은 엄마와 딸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2010년 남편과 헤어진 이 씨는 홀로 유정이를 키워왔다. 자동차 부품회사 직원으로 착실히 일하면서 적지만 돈도 모았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딸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딸의 몸에 몹쓸 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안 지난해 11월 29일, 모녀의 일상은 무너졌다. 각종 검사비와 약값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쓰고, 딸을 돌보느라 직장마저 그만둬야 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동차 부품공장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나가는 돈이 버는 돈보다 많았다. 월급 90만원을 벌어 원룸 월세, 가스비'통신비 등 공과금, 출퇴근 교통비에 약값까지 쓰고 나면 항상 잔고는 '0원'.

설상가상으로 약을 먹어도 유정이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태가 점점 나빠져 올 2월부터는 손발이 오그라들며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간경화로 간 3분의 2가 상해버렸고 마비가 심해져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유정이의 아빠는 모녀의 상황을 알면서도 생활비 한 푼 보태주지 않고, 도움을 구할 만한 이렇다 할 친척도 없다 보니 요양원이나 간병인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는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10시간 동안 유정이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리모컨조차 누를 수 없어 TV는 하루 종일 한 채널만 봐야 하고, 아무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엄마의 퇴근시간까지는 참아야 한다.

◆간 이식에만 2천만원, 도움받을 곳 없는 모녀

장롱 앞에는 깨끗하게 다려진 유정이의 교복이 항상 걸려 있다. 유정이는 TV를 보다가도 옆에 걸린 교복을 바라보며 학교에 돌아갈 날을 상상한다. 엄마는 유난히 뽀얀 피부에 볼살이 통통해 교복이 잘 어울리던 딸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 유정이의 팔다리는 뒤틀린 채 뼈만 남아 앙상하고, 상한 간 때문에 피부는 검어졌다. 다시 예뻤던 그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어 잔업도 마다치 않으며 토요일까지 일하지만 역부족이다. 유정이의 병세가 심해져 간 이식이 필요한 상황까지 왔기 때문이다.

간 이식을 하려면 수술비만 2천만원 이상이 든다. 이식 전 조직 검사에도 100만원이 든다. 여기에 입원비, 치료비 등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엄마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수술비를 마련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엄마는 또 일을 그만둬야 한다.

교육청에서 의료비 지원을 해준다는 말에 일까지 쉬어가며 서류를 마련해 갔지만 지난해 자퇴한 유정이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 거절당했다. 돈을 더 벌려면 일할 동안 유정이를 맡아줄 곳이 필요한데 아직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해 복지시설도 이용할 수 없다. 엄마와 딸은 정말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유정이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잘 안 되는 발음으로 힘겹게 말했다. "친구…들 같이 동성로 걷고 싶어요. 커서 바리…스타 되고 싶어…요." 평범한 미래를 꿈꾸는 딸 앞에서 엄마는 포기할 수가 없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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