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궁극적

입력 2014-03-17 07:02:43

중학교 때 사회 시험 문제에 '정당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알맞은 것은?'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공익 추구'라는 답을 선택했는데, 정답은 '정권 획득'이었다. 나는 답이 잘못되었다고 사회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궁극'이라는 말을 사전에 보면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잖아요. 근데 정치인들이 정권만 잡으면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익을 추구하려는 게 아닌가요? 만약에 '정권 획득'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만 잡으면 최고라는 건데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나의 말에 사회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교과서를 펴서 밑줄이 그인 부분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공부를 안 한 건 맞지만, 선생님께서는 제가 물은 것에 대해서는 답을 안 해 주셨는데요. 어떻게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는지…."

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불이 번쩍할 정도로 따귀를 맞았다. 당시 대구에서 유일한 남녀 공학에 다녔던 불쌍한 사춘기 소년은 무엇을 잘못한 지도 알지 못한 채 한 시간 동안 여학생들도 많이 드나드는 교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그 뒤 학력고사를 칠 때까지 똑같은 문제가 몇 번 더 나왔었다. 그리고 언제나 매력적인 오답으로 '공익 추구'라는 선지가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에 한 번도 그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꿋꿋이 '공익 추구'를 답으로 선택했었다.

대학에서 정치학개론을 들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문제의 정답을 '정권 획득'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이 여타 집단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당이라는 것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결집한 것이기 때문에 시민 단체나 공익 법인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바로 이 권력 지향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 '정당은 궁극적으로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사춘기 소년이었던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궁극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정쟁하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끼지만 사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될 수 있다. 궁극적 목표인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꺾어야 하므로 공개적으로 상대를 칭찬하는 법은 없고, 조그만 잘못은 크게 떠든다. 서로 헐뜯는 것이 모두 '궁극적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 합리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말 하나가 잘못된 관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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