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통화중이었다.
5일째 내린 눈으로 꼼짝 못한다는 뉴스를 보고 나도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는 통화가 끝나자 대뜸 내게 포항으로 제설작업을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도 가고 싶다"라고 말꼬리를 달고 싶었지만 난 학생이기에 "재미있겠다"면서 잘 다녀오시라고만 했다.
엄마는 한참 뒤 다시 내게 하루 수업을 체험으로 대체해서 함께 가자고 하셨다. 불가능하겠지만 혹시나 담임 선생님이 허락을 해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없다. 다시 전화기를 잡고서야 가능해진 통화에 엄마랑 통화를 하셨고, 조심해서 잘 갔다 오라는 허락을 받았다.
집결지에서 탑승한 버스가 한참을 달렸을까 펑펑 쏟아지는 눈 때문에 차는 아주 느릿느릿이다. 바로 앞에 가던 승용차도 갑자기 한 바퀴 빙 돌아 난간에 부딪혀 버린다.
포항 어느 네거리서 내린 우리는 삽,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나선다. 쌓인 눈을 치우기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차도 위에 가득한 눈 녹은 물이 더 문제다. 물길을 터주기 위해 막힌 하수구 쪽으로 눈을 치웠다. 생각보다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는데 바로 앞 식당 주인 아주머니께서 따뜻한 커피를 주셨다. 발을 헛디뎌 양말까지 다 젖어 발이 시렸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좋았다. 하수구가 뚫리고 한강 같던 물이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깨끗해진 거리. 수북이 쌓인 눈이 녹으면 우리가 뚫어준 하수구로 들어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 가벼워진 마음에 간식으로 받은 감귤이 정말 맛있었다. 많은 걸 체험하게 해주신 우리 엄마, 나만 보면 입에 올리시는 말씀, "고3 올라가니 정신 차리자 정신…. 정신 차리란 소리 그만해 주셔요. 그러나 봉사 참가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성규(대구시 북구 복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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