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이사 온 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바로 '집'이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자그마한 전신주와 사람들, 그리고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마치 움직이는 미니어처처럼 보이던 고층 빌딩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이 들이고, 산이고, 풀이고, 나무다. 그래서 맑은 날이면 낮에는 농촌 풍경에, 그리고 밤엔 하늘에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별빛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밤이 무섭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떠들썩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던 도시와 달리, 지금의 우리 집은 마을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해가 지면 정말 '칠흑 같은 밤'의 한가운데에 우리 집과 가족만이 멀뚱멀뚱 서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밤은 깜깜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기에 절로 무서운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적막으로 가득 찬 밤을 무서워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엄마 역시 외떨어진 집의 적막이 낯설긴 마찬가지였기에 이사하기 전부터 우리는 좀 더 든든한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이야기 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줄 새로운 구성원으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집을 잘 지킨다는 목청 좋은 '거위', 또는 예부터 집지킴이로 명성을 떨친 '번견'(番犬) 중에 누가 우리에게 더 맞을까 선택의 고민도 했다. 아무래도 '번견'이 더 나을 것이란 결론을 내린 뒤 어떤 개가 더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커다란 덩치의 녀석이 좋을까, 아니면 중치의 녀석이 좋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좀 작은 녀석이 좋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사이 겨울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슬슬 봄이 찾아오던 어느 날 오후, 깜빡 낮잠에 빠져든 내게 따르릉 전화 벨이 울렸다. 잠결에 전화 속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큰 방쪽 창을 열었을 때, 내 눈을 의심하며 외쳤다. "엄마, 웬 강아지가 있어!" 내 눈이 머문 곳엔 체셔의 절반 크기의 조그마한 갈색 강아지가 아빠 곁을 맴돌며 낑낑 거리고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점심모임에 간 엄마가 강아지를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한 분이 자신의 친구 집에 태어난 지 한 달이 넘은 강아지들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줬고, 엄마는 그 강아지들의 얼굴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아빠에게 연락을 했는데, 아빠가 보러 간 김에 다짜고짜 그중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전부터 '우리 집 새식구가 귀여운 강아지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강아지가 오니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번견을 맞이할 생각이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친 요 녀석은 너무나 작고 연약해보였다. 게다가 처음 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기며 애교를 부렸다. 낑낑거리던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집 안 현관'까지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밖에선 그렇게도 낑낑거리던 녀석이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울음을 딱 그쳤다. 그리고 미처 사료가 오지 않은 탓에 혹시나 안 먹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급조한 '내 맘대로 강아지용 이유식'(북어와 쌀을 넣고 푹 삶은 죽)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현관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만족하며 조용히 잠을 청했다.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울 꼬마 강아지에게 고작 마련해 준 자리가 현관이라 살짝 미안했지만, 천진난만한 녀석이라 그런지 갑자기 확 바뀐 주위 환경과 낯선 이들에게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아 안도했다. 당분간은 요 녀석 덕에 우리 집에 꽤나 소란스러운 바람이 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 흐를 정이 가득 담긴 따뜻한 기류,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날 녀석의 씩씩함이 한껏 담겨 있을 것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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