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것은 초겨울이었다. 기원전 218년 봄 이베리아반도에서 출병한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보병 5만 명과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했다. 먼 길을 오기에 순탄한 해안을 따라올 것이라는 예상으로 로마는 방어선을 쳤다. 전술의 천재였던 28세의 한니발은 론(Rhone)강을 뗏목으로 건너며 알프스를 넘었다.
이듬해 봄 이탈리아 북쪽 돌로미티 계곡의 작은 마을 벨루노에 한니발이 나타났다. 켈트족이 살던 이곳은 철과 납의 생산지였기에 한니발은 분지형태를 살려 군사 요충지로 만들었다. 로마 영토로 들어온 한니발은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무리한 행군 때문에 눈병(opthalmia)을 앓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전투 후유증으로 한니발은 실명했고 바로 그 벨루노지역은 오늘날 '안경의 계곡'이라고 불리고 있다.
벨루노지역에서 안경이 발달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세기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적은 기록에 따르면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해 물을 채운 유리를 이용했다고 하니 안경의 역사는 2천 년이 넘는다. 사료에 따르면 1285년 벨루노에서 독서용 안경이 만들어졌고 1317년에는 국제적으로 거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 벨루노지역은 인구가 20만인데 안경매출은 20억유로(원화 3조원)에 달한다. 종사자는 1만4천 명에 이르며 4개의 국제적 대기업과 170개의 중소기업들이 협업을 유지하여 세계안경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명품 안경 산지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대구의 안경산업을 살펴보자. 대구는 국내안경의 82%를 생산하는 안경의 도시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안경산업은 대구경제를 지탱해왔던 섬유와 더불어 대표적 경공업 제품으로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과 기술격차, 중국산 제품의 추격 등으로 시장규모와 매출이 점점 줄어드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안경은 150개 이상의 공정과정이 필요하므로 중소업체의 협업과 분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세계적인 안경생산지인 벨루노와 일본 후쿠이 등도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고 협업을 통한 동반성장이 중시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달 13일 착공한 '안경산업 토탈비즈니스센터'에 주목하게 된다. 대구의 안경이 명품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의와 정책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디자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과거에는 안경의 기능을 중시했지만 오늘날에는 기능에다가 패션이 중시되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했다. 안경의 제조과정은 자동화나 기계화가 어렵기 때문에 수작업이 필수적이고 따라서 작은 부품에서도 세심한 디자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벨루노에는 안경디자인 전문업체가 650개나 있고 전문 디자이너 1천700명이 디자인 개발에 집중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신소재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 신소재 개발은 비용과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모조품이 시장을 교란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신소재 개발을 등한시할 수 없다. 오늘날 신소재 개발은 색상, 마감처리와 더불어 절대적으로 중요해지고 있어 투자와 인력육성을 지원해야 한다. 벨루노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안경업계는 최근 탄소섬유까지 소재를 확장하고 있다.
셋째, 시민들의 인식전환도 중요하다. 내달 엑스코에서 열리는 대구국제안경전(DIOPS)은 우리나라 유일의 안경관련 전문 전시회이다. 올해로 14회를 맞게 되는 이 전시회는 안경인들 만의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할 것이다. 벨루노는 세계최대의 명품안경 생산지이지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할인판매뿐만 아니라 축제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오늘날 안경은 시력을 보정하는 기능 외에도 보호하는 기능도 추가되고 있다. 만약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때 고글이라도 있었다면 눈병으로 실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대내외적으로 안경산업의 환경변화로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안경의 용도는 다양화되고 있어 시장은 넓어지고 있다. 지금의 고비를 넘어서면 대구의 안경산업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김영우/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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