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의 시와 함께] 볼트 하나의 詩-김명수(1945~ )

입력 2014-03-10 07:51:53

볼트 하나 길에 버려져서

녹이 시뻘겋게 슬어 있다.

내 친구 월남전선에서 다리 한짝 잃고

목발을 짚고 걸어 나온다.

아이녀석 몇명이 쓸모없는

볼트 하나 시궁창에 차 넣는다.

어디서 버림받은 계집이

악다구니 소리를 지르고 있다.

-시집 『월식』,민음사, 1995.

시인이란 명칭이 따라다니는 사람은 시를 공부하려는 이들로부터 늘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대답은 늘 다양할 수밖에 없다. 김명수의 이 시는 그런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이 될 수 있다. 시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깊이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찾아내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어휘는 좋은 시의 조건이 되기 어렵다.

화자는 길에 버려진 녹슨 볼트 하나를 본 체험으로부터 시적 영감을 얻고 있다. 녹슨 볼트 하나가 시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볼트의 현재는 초라하다. 아이들의 발길에 차여 시궁창에 들어간다. 시인은 그 볼트 하나로부터 월남전에서 다리 잃은 친구를 떠올리고,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여자를 떠올린다. 시인의 관찰과 감수성이 볼트의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볼트는 어떤 구조물을 단단하게 지탱하기 위해 전력으로 구조물에 박혀 있었을 것이다. 볼트가 없었다면 그 구조물은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볼트의 효용가치가 사라지자 버림받고 길에 굴러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사소한 볼트 하나라도 오래 바라보고 관찰하면 그의 과거도 볼 수 있고, 이 세상 모든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절절한 연민의 정도 발견해 낼 수 있다. 이 시에는 연민이라든가 사랑이라는 어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 시인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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