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허구 그리고 변호인

입력 2014-03-10 07:53:29

우리나라 고전소설 중에는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등과 같이 제목에 '전'(傳)이라는 제목이 붙는 것이 많다. '전'은 원래 한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하면서 그것을 일정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양식이다. 그래서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오자서전'이나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온달전'과 같이 역사적 인물과 사실을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거나 사물을 의인화한 허구적인 '전'의 형태가 나타났다. 특히 조선 후기에 오면 설화가 전에 들어오면서 허구적 문학 양식인 소설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소설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실제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이유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평하면서 사람들이 도원결의(桃園結義)나, 제갈량이 동남풍을 만들었다는 성단제풍(星壇祭風) 이야기는 모두 과거의 설화들에서 따온 것이지만 사실로 믿고, 유비가 자신의 의도를 꿰뚫고 있는 조조의 말에 놀라 숟가락을 놓쳤다는 선주실비(先主失匕)와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게 되었다고 개탄을 했다. 소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고, 실제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김만중은 같은 글에서 소설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에게 '삼국지연의'를 읽어 주면 유비가 패했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승리했다는 이야기에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는데,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를 읽어 주면 아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소설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입하고,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이 가진 허구성과 진실성이다. 소설이 허구라는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거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일을 재료로 하지만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 가공을 했다는 것이 허구성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가 될 것이다. 역사서 '삼국지'를 보면서는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지만,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참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영화 '변호인'이 역대 5위의 흥행 성적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어떤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든가 부분적인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부분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순간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한 느낌으로 영화관을 나왔던 것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성'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송기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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