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두루마리 화장지 '형광증백제' 주의보
새내기 주부 이모(31) 씨는 두루마리 휴지를 쓰지 않는다. 아기 입 주위에 아토피가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질이 좋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로 아기 입을 자주 닦을 때 아토피가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휴지는 막연히 깨끗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첨가물 등을 꼼꼼히 살펴야겠다"고 말했다.
두루마리 휴지가 생활 속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두루마리 화장지에 인체 유해물질인 형광증백제 포함 여부를 알 수 있는 표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섬유나 종이를 하얗게 표백하는 형광증백제는 오랫동안 피부와 접촉할 때 아토피, 피부염 등 피부질환뿐 아니라 섭취할 경우에는 장염, 소화기질환, 암까지 일으킬 수 있는 위험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형광증백제 포함 여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유해물질 검출
소비자문제 연구소 컨슈머리서치에 따르면 깨끗한 나라, 쌍용C&B, 유한킴벌리, 미래생활, 모나리자 등 국내 5개 두루마리 화장지 업체의 재생지 사용 5개 제품에 대한 형광증백제 함유 여부를 조사한 결과 5개 제품에서 모두 형광증백제가 검출됐다. 하지만 이들 제품을 포함한 45개 화장지 중 형광증백제 포함 여부를 표시하고 있는 제품은 미래생활의 '잘 풀리는 집' 브랜드 5개 제품과 쌍용 C&B의 코디 에코맘 등 6개에 불과했다. 이나마 6개는 모두 '무형광' 제품임을 알리고 있을 뿐 형광증백제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제품은 한 개도 없었다.
45개 제품 중 형광증백제 포함 여지가 없는 100% 천연펄프는 20개로 조사됐고 이 역시 '무형광' 표기는 따로 하지 않았다. 휴지 제조업체들이 유해 물질 표기를 하지 않는 데는 생산과정에서 인위적으로 형광증백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표시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두루마리 화장지 원료로 재활용하는 복사용지에는 이미 형광증백제가 사용돼 있다. 다만 이 중 100% 천연펄프로 표기된 제품에는 형광증백제가 들어 있지 않다.
◆형광증백제 표기 의무화해야
화장실용 화장지 생산 과정에서 형광증백제 투여는 불법이다. 기술표준원은 형광증백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인체 위험성이 제기되자 2010년 12월 '화장실용 화장지 생산 과정에서 형광증백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화장지 업체들이 형광증백제를 인위적으로 공정 과정에 넣지는 않지만 원료에 포함된 형광증백제가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규정상으로 재생원료를 사용한 경우에는 '본 제품은 자원 재활용을 위해 재생원료를 사용한 제품'이라고 표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화장실용으로만 사용할 것, 식당이나 가정 등에서 냅킨 용도로 사용하지 말 것'이라고 주의사항만 표기했다. 하지만 화장지의 용도를 구분해 사용하는 소비자는 적다. 실제 식당 등에서도 재활용 두루마리 화장지를 냅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형광물질 포함 여부는 함구한 채 '깨끗한 무향' '도톰하고 폭신폭신한 3겹' '먼지가 날리지 않는' '부드럽고 위생적인' 등의 모호한 광고로 소비자들의 경계심을 낮추고 있다. 두루뭉술하게 제품 장점만을 내세운 표시 내용만 보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전혀 인식하지도 못한 채 형광증백제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기술표준원은 "형광증백제가 유해성분이라는 신빙성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표기 의무를 부과할 경우 과도한 규제로 업체 측에서 반발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컨슈머리서치 관계자는 "천연펄프 제품이 다수 나오면서 소비자가 두루마리 화장지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형광증백제 포함 여부에 대한 표기가 반드시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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