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신대륙엔, 질병도 함께 상륙했다…『콜럼버스의 교환』

입력 2014-03-08 07:11:08

1950년대 우표 수집 붐에 편승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결핵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데 활용된 크리스마스 실.
1950년대 우표 수집 붐에 편승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결핵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데 활용된 크리스마스 실.

콜럼버스의 교환/황상익 지음/을유문화사 펴냄

질병은 인류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했고, 인류와 함께 걸어왔다. 어느 시대나 시대적 공포가 될 만한 질병이 존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페스트(흑사병), 콜레라, 결핵 등은 인류에게 공포이자 재앙이었다. 최근 몇십 년 사이에도 새로운 질병들이 생겨났다. 에이즈, 신종플루,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30~40년 동안 한 해에 한 개꼴로 새로운 병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 '콜럼버스의 교환'은 인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의 질병과 의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다. 이를 통해 질병이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인류는 또 질병에 어떻게 대항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의사서(醫史書)다.

인간은 인간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질병에 피해를 입었고, 상당 부분 극복하기도 했다. 인류 문명 발달 과정에서 인간이 건설한 문명이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을 공격하는 질병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질병의 역사이자 인간의 역사이기도 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란 신대륙과 구대륙 사이에 일어난 질병의 교환을 뜻한다.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넘어온 질병은 매독이 거의 전부였지만,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넘어간 질병은 두창, 인플루엔자, 홍역, 장티푸스, 말라리아,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 수없이 많았다. 두창이나 인플루엔자, 홍역 등은 가축 또는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병들인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런 질병이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유럽의 이주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은 그들이 '질병에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문명을 건설했고, 군사력도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에 노출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손쓸 수도 없이 무너졌다. 그야말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괴멸은 노동자의 부족 현상을 야기했고, 이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잡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전염병이 하나의 대륙을 초토화시키고, 또 하나의 대륙을 노예공급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총체적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병과 증상을 혼동했다. 열, 기침, 출혈, 설사 등을 곧바로 병으로 인식했고, 그래서 설사병, 기침병, 열병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1500년대 인체해부학이 탄생하고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7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질병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변한 것이다.

질병에 일방적으로 당하던 인간은 마취제의 개발로 대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화학의 발전으로 마취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질병에 비교적 팽팽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취제를 발명하기 전에도 아편과 알코올을 사용해 수술을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외과수술은 19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가능했다. 해부학, 생리학의 기반 위에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마취와 수혈, 감염 문제가 해결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시대, 유럽인의 평균 수명은 35세에 불과했고, 산업도시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은 15세가 고작이었다. 환경오염과 영양결핍, 특히 결핵이라는 전염병이 문제였다. 유럽의 경우 생활환경이 개선된 1900년 이후 결핵이 점점 줄었고, 후진국의 경우에는 1945년 결핵약이 개발된 이후 결핵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질병의 탄생과 의학의 탄생을 다룬다. 2부에서는 과학의 혁명과 이에 따른 의학의 혁명과 발전을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우리나라의 현대 의술 도입과 발전을 짚어본다. 근대 의료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과정에서부터 전통적인 한국인의 질병, 일제강점기의 전염병과 관리 실태, 해방 이후의 질병과 의료, 현대 한국인의 건강 등을 소주제로 하고 있다.

지은이 황상익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교수로 의학과 의술의 발전 과정, 질병의 변천과 그에 대한 대응, 북한의 보건의료, 환자'의사 관계, 문명 간의 교섭을 주로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첨단의학시대에는 역사시계가 멈추는가' '인물로 보는 의학의 역사' '의대담' '근대 의료의 풍경' 등이 있다.

363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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