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내각 출범 이후 일본의 역사 왜곡이 점입가경이다. 해묵은 독도 점유권에 대한 억지 주장을 계속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대표적인 반인권 전쟁범죄인 위안부 강제 동원마저 부인하고 있다. 역대 일본 우익 정권이 되풀이해온 역사 부정 망동을 총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행태이다.
아베 내각의 이러한 반역사적이며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노라면 요즈음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대하사극 '정도전'의 내용이 자꾸 오버랩된다. 일본의 우리나라 침탈은 삼국시대부터일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인데, 특히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고려말에 이르면 국운의 쇠약과 함께 왜구의 준동이 극에 달했다. 해안은 물론 내륙 깊숙이까지 침략의 손길이 뻗쳐 그러지 않아도 쇠락하고 있던 고려의 멸망을 더욱 재촉하였다. 이러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황산대첩 등을 통해 나라를 구한 인물이 바로 이성계이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이성계의 무력(武力)과 신진사대부들의 문력(文力)이 조선 개국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 건국 후에도 왜구의 침략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세종대왕 때 응징 차원에서 단행된 대마도 정벌(1419)을 계기로 한동안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70여 년 뒤에는 다시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 전 국토를 분탕질하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선현들의 의병 활동에 의해 패퇴하였다. 이후 다시 평화를 애걸하며 조선통신사를 통해 온갖 문화적 혜택을 받아오다가 서세동점의 제국주의시대 조류에 편승하여 끝내는 우리의 국권을 35년간 강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본다면 근래 일본 집권 세력의 행태는 그야말로 우리가 만만하게 보일 때마다 도지는 '제 버릇 남 못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이런 침략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한동안 세계인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패전을 딛고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우뚝 섰고, 경제발전에 걸맞게 문화적 의식 수준도 높아 '질서, 친절, 정직'이 일본을 상징하는 정신문화 브랜드로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최근 불편해진 한일 관계로 급락하기는 했지만 2, 3년 전만 해도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또한 60%를 상회하여 미국 다음에 이를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런 이중성을 보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무사도(사무라이 정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 역사에서 무사 계급은 봉건영주를 위해 봉사하는 무력 집단이다. 따라서 무사도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의 문화이며, 칼의 문화이다. 이것이 왜구 이래 지속되고 있는 침략성의 문화적 DNA이다.
하지만 일본의 무사도에는 이런 측면만 있지 않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앞의 정신문화 브랜드도 기원은 무사도이다. 이것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임진왜란 때 납치된 조선 선비 강항(1567~1618)을 비롯하여 200년간 지속된 조선통신사들로부터 도덕적으로 감화를 받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전략적으로 채택되고 확산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바탕이 된 퇴계학은 일종의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를 쓴 귀화 지식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하여 붓을 잡은 선비와 칼을 찬 사무라이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선비 정신과 일본의 무사도는 기본 가치관에서 닮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칼에만 의지했던 무사도가 한 차원 높은 정신문화로 리모델링되는 데 우리 선조들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이다.
근래 다시 발호하는 일본의 극단적인 우경화 흐름에 슬기롭게 대응하려면 그들의 이와 같은 두 얼굴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구의 침략 근성과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칼'(무력)이 숨을 죽였을 때는 우리의 '붓'(문화)이 그것을 압도했을 때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극일의 길은 자명하다. 우리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아 인류의 보편적 도덕성에 기반을 둔 문화적 선진국으로 다시 자리 잡는 것이다. 계속되는 일본의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현명한 답은 이미 역사가 실증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늘 되새겨야 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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