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배우들 신명난 굿판
무당에 대해 가지는 이중적인 시선은 언제나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미신을 좇아가는 자일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승과 저승,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헌신적인 영매이다. 무당을 사라져야 할 구습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김금화 무당은 실은 국가가 인정한 중요무형문화재이다.
굿하는 행위를 기괴한 것으로 보고 천시하기 마련이지만, 정작 앞날이 불안해지면 무당을 찾아가서 미래를 점쳐보고 복을 기원한다. 사회적으로 천대받아온 무당에게 앞날의 풍요로움을 희구한다는 아이러니. 무당은 우리 안의 모순을 드러내는 대상이다. 두렵지만 보고 싶은 욕망의 충돌 지점. 무당은 온갖 경계에 서 있는 자이다. 영의 세계와 속의 세계, 이승과 저승, 귀신과 인간, 과거와 미래, 환영과 현실… . 그 경계에 날카롭게 서 있는 자인 무당은 시퍼런 칼날 위에 서서 춤을 추며 그의 위태로운 존재를 과시한다.
영화 '만신'은 대한민국 대표 무당 김금화 이야기이다. 만신이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경계의 칼날 위에 서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자, 김금화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경계들을 실험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극영화, 애니메이션과 공연을 한데 엮어나간다. 그리하여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 한쪽에는 수십 년간 기록해온 김금화 만신의 굿을 구경하는 한 줄기가 있고, 또 한쪽에는 우리 땅에서 살아온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판타지 다큐멘터리라는 형용 모순의 단어를 입힐 수밖에 없는 매우 특이하고도 특별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의 황해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여자아기에게 부모는 '다음에는 아들이 넘본다'라는 뜻의 이름 '넘세'를 붙여준다. 일제의 위안부 소집을 피해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시어머니의 호된 구박을 피해 도망친다. 어린 넘세는 아이들 앞에서 예언하다가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을 보는 등 극심한 신병을 앓는다.
넘세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큰 무당이었던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아 무당의 길로 들어선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무당들은 남과 북 양측으로부터 첩자 혐의를 받고 핍박당한다. 그녀는 총부리 앞에서도 의연하게 아픈 사람들을 위해 굿을 펼친다.
1970년대에 전개된 새마을운동의 분위기는 무속을 폄하하고 탄압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경찰은 굿판을 뒤엎기 일쑤였고, 기독교인들은 무당을 악귀 들린 자로 취급하며 탄압했다. 이 모진 세월과 수모, 억압과 편견을 이겨낸 자리에는 자부심과 존엄성이 들어앉았다. 1980년대에는 김금화 만신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정당한 정권이 아니었던 신군부는 들끓는 민심을 무마하고자 각종 문화정책을 펼쳤고, 전통문화를 복권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김금화가 발견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전통 강신무(신이 내려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는 사람)로서 황해도와 서해안 지방의 주요 전통 무속 의례 보유자로 무형문화재가 되고,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굿을 펼친다.
김금화 만신의 이야기는 자서전 '비단꽃 넘세'에 근거한다.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내레이션이 상황들을 설명하다가 어느덧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김금화 본인으로 넘어간다.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다시금 풀어내기 위해 세 명의 배우들이 뭉친다. 어린 남세 역에 '아저씨'의 아역배우 김새론, 꽃 같은 나이에 내림굿을 하는 금화 역에 류현경, 그리고 40대 금화 역을 문소리가 맡는다. 김금화 본인은 세 시대와 세 연령대의 금화를 연결하며 이야기를 엮으며, 그 가운데 대한민국 현대사가 펼쳐진다.
이 특별한 다큐멘터리의 감독 박찬경은 일찍이 미디어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미술과 사진에서 디지털 영화로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그리고 만신을 만나면서, 굿과 영화의 일맥상통함을 간파한다. 본래는 떠도는 영혼과 고통받는 삶을 달래기 위한 굿이었다. 고난으로 점철된 현대사와 개인사에서 체득한 삶의 깊이로 인해 굿은 해학과 오락으로 거듭났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한판 질펀하게 놀 수 있는 놀이판, 그 속에는 눈물, 회환, 분노, 슬픔, 웃음, 풍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무당은 배우이고 굿판은 신명난 무대가 된다.
음지의 문화였던 굿을 당당하게 공식화된 문화로 일깨우는 역할을 이 영화가 자임한다. 우리의 얄팍한 호기심 어린 관심은 이내 곧 거대한 찬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기구함이 만신의 육체를 관통하면서 형성된 압도적인 카리스마에서 기인한다.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그 어느 곳보다도 한 많은 혼령이 많았을 이 땅에서, 영혼과 영혼을 연결하는 슬프고도 강한 영매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이랴.
영화는 수십 년간 기록해온 김금화 만신의 귀한 굿 연행들을 조각조각 잇고, 사이사이에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무당의 사회학적인 역할과 의미에 대한 정보를 전한다. 현대판 무당인 여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재미도 신선하며, 전통민화를 차용하여 표현하는 서해안 설화 애니메이션은 아름답다.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는 진기한 굿은 굿(good)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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