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窓] 무관심은 미움 보다 더 무섭다

입력 2014-03-05 07:47:09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했던 한수원 건설본부의 '경주 철수'가 기정사실화 됐다. 건설본부는 지난달 22일 일요일을 기해 이삿짐을 싸고 서울로 철수했다. 한수원은 1년 전 건설본부 직원들을 내려 보내면서 갖은 홍보를 했다. 당시 '건설본부 이전은 한수원 본사의 경주 완전 이전을 위한 전초전이다', '한수원 직원은 경주시민으로 살겠다'는 등의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꼭 1년 만에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가버렸다. 한수원 관계자는 경주에서 근무하던 건설본부 직원 170명을 노사 합의에 따라 서울 본사로 전원 복귀시켰으며, 대신 서울의 직원 170명을 4개월 일정으로 경주 근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4개월 단위로 순환근무를 시키기 때문에 인력의 가감은 없으며, 처 단위 및 팀 단위로 근무하고 임원들도 순환 상주한다는 방침이라며 선심 쓰듯 덧붙였다. 경주시민들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여겨지지만 너무나 궁색한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에 교체되는 인원은 한수원 중앙본부가 아닌 7개 지역 본부에서 경주 근무 희망자를 받아 인원을 충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업무를 본부장이 아니라 한수원 이전팀장이 총괄하는 것으로 전해져 지역 내 한수원의 격도 더 낮아졌다는 평이다.

경주시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4년도 아니고 4개월만 경주에 근무한다는 것은 일을 하겠다는 건지 놀러 오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비난 일색이다. 시민들은 또 "170명이 가고 170명이 온다고 했는데 누가 사람 숫자를 세어 본 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 몇 명이 있느냐, 줄 세워 보라'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입에 올리기도 싫다는 반응이다. 경주시의회와 일부 시민단체들도 "경주에 단풍놀이 오느냐, 꽃구경 오느냐"는 등의 비판을 하고 있다.

한수원은 그동안 경주시민들에게 여러 차례 실망을 안겼다. 한수원 본사의 도심권 이전과 동경주 이전 문제를 두고 경주시민이 갈등을 보일 때도 정작 앞장서서 서로 이해를 시키고 타당한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마땅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이런 기회를 틈타 경주 이전을 '없던 일'로 하려는 생각도 가졌음직하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전 방폐물관리공단)이 3년 전 본사 전 직원을 경주로 조기 이전하는 모범을 보였지만 한수원은 "자꾸 경주에 내려오라고 보채면 울산으로 가버리겠다"고도 했다. 서라벌대학에 임시사옥을 만들어 줄 테니 내려오라는 요구에도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무산시켰다.

옛말에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한수원의 경주 철수를 시민들은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싸늘했다.

웬만큼 미운 짓을 해도 사람이 난 자리는 섭섭한데, 한수원의 경주 철수를 섭섭해하는 사람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경주 사람들이 한수원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한수원은 무관심이 미움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이 기회에 깨닫길 바란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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