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화상 고통 아버지 돌보는 조선웅 씨

입력 2014-03-05 07:47:20

"아버지 홀로 두고 부대 복귀하자니 앞이 캄캄"

화상치료를 받고 있는 조윤식(가명) 씨를 위해 군 복무 중 특별휴가를 낸 아들 선웅(가명) 씨가 돌보고 있다. 선웅 씨는
화상치료를 받고 있는 조윤식(가명) 씨를 위해 군 복무 중 특별휴가를 낸 아들 선웅(가명) 씨가 돌보고 있다. 선웅 씨는 "간병인조차 쓸 수 없는데 부대로 복귀해야 해 막막하다"고 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조선웅(가명'25) 씨는 화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 조윤식(가명'56) 씨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군인 신분인 조 씨는 며칠 뒤면 부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역이 6개월이나 남았지만 모아 놓은 돈은커녕 부채만 잔뜩 지고 있어 간병인조차 쓸 수 없는 형편이다. 정신조차 온전치 못한 아버지가 혼자 남아있을 생각을 하면 조 씨는 앞날이 막막하다.

◆맞고 살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조 씨의 어린 시절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장면이다. 불과 4살 정도의 일이지만 어머니가 술 취한 아버지에게 무자비하게 맞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떠나던 날 눈물을 흘리던 모습도 떠오른다.

조 씨의 아버지는 의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는 대구, 경북, 경남 등지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교에 심취했다. 10여 년을 청소, 장작 패기 등 소일거리를 하면서 절에서 기거하다 보니 가족들과 고향 사람들은 그를 '반(半)스님'으로 여겼다.

25년 전 아버지는 시부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이혼을 하고 절에 찾아온 어머니를 만났다. 처음에는 애처로운 마음에 위로를 해주다 두 사람은 정이 들었고, 결국 산사에서 내려와 결혼한 뒤 조 씨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스님이라고 알던 사람들이 많아 어머니와 함께 절에서 내려오자 파계승이라고 수군덕거렸다고 들었어요. 사실 아버지는 자신이 스님이 되는 것은 불가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포기했다더군요."

행복을 꿈꾸며 꾸린 가정이지만 금세 불행이 찾아왔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고 어머니는 폭력에 시달렸다. 폭력에 못 견딘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나무껍질로 죽을 끓여 먹었던 어려운 생활

조 씨와 아버지는 의성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마을로 갔다.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 씨의 삶은 더욱더 힘겨워졌다. 평소에는 멀쩡한 아버지이지만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친정집에 가서 어머니를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고, 알몸으로 동네를 뛰어다니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자신들이 먹을 것도 없으면서 농사지은 쌀을 절에 시주하기도 했다.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남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며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시주하고 남은 쌀이 거의 없어서 다른 집에서 탈곡하고 떨어진 이삭을 주워다 나무껍질과 함께 죽을 끓여 먹기도 했어요."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보낸 조 씨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와 떨어져 구미로 떠났다. 이상한 행동을 하곤 하는 아버지가 걱정됐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는 대학생활을 가로막았다.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낸 뒤 조 씨는 구미 한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며 아버지에게 생활비도 보내주고 학비도 모았다.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조 씨는 대출까지 받아 큰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믿었던 동료는 사라져버렸고 모두 조 씨의 부채로 남아버렸다.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저에게 높은 이자까지 쳐주겠다고 하니 속아넘어가버렸어요. 결국 불행을 제가 자초한 거죠."

◆군대로 돌아가면 돌봐줄 사람 없는 아버지

동료에게 사기를 당한 조 씨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공장에서 2년간 일을 하면서 부채를 갚아나가던 어느 날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2012년 육군으로 입대하게 됐다.

군생활을 하던 조 씨는 지난 2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특별 휴가를 받아 도착한 병원에서 조 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스스로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생각에 화도 내봤지만, 아버지는 죽으려고 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부처님이 도와준다고 했다'거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등 이상한 말만 했다.

"진작에 아버지를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야 했었는데 후회스러웠어요."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몸의 3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심한 화상 때문에 침대 시트가 진물로 흥건히 물들 정도다. 다리의 심한 화상으로 혼자서는 거동조차 못해 누군가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며칠 뒤면 조 씨는 부대로 돌아가야 하지만 돈이 없어 아버지를 돌볼 간병인조차 쓰지 못한다. 6개월간은 군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병원비 걱정도 한가득이다. 의성군으로부터 300만원의 긴급의료비지원을 받고, 부대에서도 정성을 모아 150만원을 보내줬지만 중간 병원비만 1천200만원이 훌쩍 넘고, 앞으로는 피부이식 등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치료가 남아있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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