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나마 '여신'들을 실제로 본 것은 4년 전 이맘때였다. 청와대 취재 기자들의 업무 공간인 '춘추관' 앞마당에서였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귀국한 직후였다.
대통령과의 오찬을 위해 청와대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태극전사'들에게는 당연히 많은 관심이 쏠렸다. 모두, 기자로서가 아니라 팬으로서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피겨 여왕' 김연아는 단연 인기였다. 수십 명이 휴대폰에 그의 사진을 담아두려고 한꺼번에 몰렸다.
밴쿠버에서 새로운 '빙속 여제'로 등극했던 이상화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그 표정이 다소 묘해 보였다. 그는 당시 귀국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더 예쁘고 몸매도 날씬하지만 나도 나만의 매력을 갖고 있다"고 깜짝 발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왕(女王)과 여제(女帝)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전자가 우아함, 부드러움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차가움, 역동하는 힘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성으로 평가받는 피겨스케이팅과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하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상화가 소치 올림픽을 통해 '여신'으로 거듭난 것은 단순한 '꿀벅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비록 스스로는 "아직도 허벅지가 콤플렉스"라고 말해도 국민들은 그의 허벅지에 숨겨져 있는 끊임없는 노력에 공감했다. '하의 실종 패션'을 선보인 과감함에서는 20대의 당당함과 유쾌함에 함께 즐거워했다.
지난주 다녀온 삼성 라이온즈의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에서도 '금벅지'는 화제였다. 정규시즌 MVP를 노리는 배영수는 이상화가 하체 강화를 위해 170㎏ 바벨을 어깨에 메고 스쿼트(squat)를 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토종 에이스'답게 "저도 그 정도는 한다"며 자신의 굵은 허벅지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의 '신화'를 쓴 뒤 오랜 침체를 겪다가 지난해 다승왕으로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었던 '자존심'이었다.
올 시즌부터 보직을 변경, 마무리 투수로 나서는 안지만 역시 투수 가운데 손꼽히는 '철벅지'의 소유자다. 그러나 2002년 삼성에 입단할 당시 그의 체격은 키 180㎝에 65㎏이었다. 프로야구 전체 선수 가운데 최경량 선수로 등록될 정도였다. 얄팍한 허벅지로 힘 있는 공을 뿌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튼튼한 하체를 갖기 위해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에 대해 그는 "상상 그 이상일 것"이라고만 했다.
운동 선수들에게 허벅지 단련은 필수불가결한 훈련이다. 종목을 따지지 않는다. 가녀린 김연아의 '교과서 점프'나 손연재의 '요정 연기' 역시 탄탄한 허벅지 근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본 중의 기본인 셈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세상사가 다 마찬가지일 듯싶다.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고 기초부터 충실히 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정답이다. 지름길을 찾겠다는 과욕은 스스로를 족쇄에 채우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요행을 바라며 유행을 좇다가는 자칫 헤어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져버릴지 모른다. 동'서양의 선현들도 '욕속부달'(欲速不達'빨리 하고자 하면 이르지 못한다), 'Back to the basic'이라 하지 않았나. 물론, 이상화처럼 170㎏ 중량으로 스쿼트하기란 필자 같은 백면서생(白面書生)에게는 어차피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뜻의 속어)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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