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대학가 복사집만 붐벼…서점들 폐업위기 울상

입력 2014-03-01 09:43:25

전공책 너무 비싸 사는 대신 제본

수십만 원대의 비싼 전공서적 책값을 절약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서점 대신 복사 집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구 시내 한 대학 인근 복사 가게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수십만 원대의 비싼 전공서적 책값을 절약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서점 대신 복사 집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구 시내 한 대학 인근 복사 가게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경북대학교 인근에서 30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양화송(81) 씨는 최근 가게 규모를 줄일까 고민했다. 3월이면 학기가 시작돼 서점으로선 최대 대목을 맞지만, 이도 옛날 말이다. 양 대표는 "교재를 죄다 불법복사해 쓰니 책이 팔리지 않는다"며 "이런 현상이 10년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하나둘씩 복사 집이 생겨 이제는 경북대 주변에만 40개가 넘는다는 양 씨는 "한참 책이 많이 팔릴 때와 비교하면 채 30%도 팔지 못한다"고 했다.

제본에 밀려 그 사이 문을 닫은 서점만 대여섯 개. 경북대 주변에 남은 서점은 이곳 하나뿐이라고 양 씨는 말했다. 양 씨는 "불법복사는 대적하기 어려운 적 같다"며 "이젠 서점 규모를 줄이든지 문을 닫든지 해야지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불법복사로 대학가 서점들이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대학가 서점의 주 매출이 대학교재 판매인데, 가격이 비싸다 보니 많은 학생이 제본(복사해 엮은 책)으로 이를 대체해서다. 자연스럽게 매출은 줄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서점이 속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각 대학가 주변에는 1, 2곳 서점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복사 집은 성행을 하고 있다. 경북대 주변에 40여 개, 영남대와 계명대 주변에도 30개 안팎의 복사 집이 영업 중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경북대 주변. 군데군데 복사 집이 눈에 띄었다. 한 복사 집은 신학기를 맞아 몇몇 학과 전공교재를 벌써 제본해 쌓아두기도 했다. 이곳 복사 집은 서점에서 파는 똑같은 교재의 1/3 수준 가격표를 붙여 놓고 있었다. 복사 집 직원은 "요즘은 예전처럼 원본 책을 들고 오면 일일이 복사해 제본하지 않는다"며 "학교 홈페이지에 수강계획서가 올라오면 수업 교재를 확인할 수 있어 개강 전부터 컴퓨터에 복사본을 저장해뒀다가 미리 제본해 놓는다"고 했다. 새 학기가 되면 워낙 주문량이 많아 이처럼 하지 않으면 손님을 뺏기게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서점 대신 복사 집으로 향하는 건 교재 값이 비싸서다. 한 학기에 5~7개 과목을 들을 때 사야 하는 책값만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20만원에 이른다. 특히 공과대학 전공서적은 한 권당 10만원을 넘기도 한다.

대학생 송모(22'여) 씨는 "비싼 등록금에 책값까지 수십만원이 드니 불법인 줄 알면서도 싼 제본을 찾게 된다"며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책값은 해마다 오르기만 한다"고 했다.

개인의 저작물을 임의로 제본하거나 복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지역 대학가에서 불법출판물을 팔다 적발된 사례는 29건, 단속 출판물은 752점이 고작이다. 성행하는 제본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단속 건수다.

저작권보호센터 관계자는 "제본은 물론 복사 기계에 저장된 파일까지 확인하기는 한다. 하지만 단속반이 할 수 있는 건 불법복제물을 폐기하는 수준으로, 저작권을 가진 대상이 불법 복사를 한 업체를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며 "앞으로는 경찰, 검찰 등과 공조 체계를 구축해 상시적인 합동 단속을 벌이겠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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