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김홍도/ 설흔 지음/ 낮은 산 펴냄
단원 김홍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40대 후반에 얻은 아들 김양기였다. 늦게 아들을 얻은 까닭에 김홍도가 세상을 뜰 때 김양기의 나이는 열넷 혹은 열다섯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양기는 아버지를 닮아 그림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김양기가 아버지의 그림을 베껴 그리면 웬만큼 밝은 눈으로는 김홍도의 그림인지 김양기의 그림인지 분별하지 못했다.(물론 이 부분은 소설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김양기는 아버지처럼 화원이 되지는 않았다. 열세 살이 될 때까지는 화원이 되기 위해 그림 공부에 전력했지만, 그 후로는 화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밥벌이를 위해 화원이 되는 대신 김양기는 서당에서 훈장 노릇을 했다. 그림을 잘 그렸고, 끊임없이 그리기는 했지만 그림을 팔지도 않았다. 그림을 가까운 이들에게 주거나 자신이 보관하는 게 고작이었다.
왜?
장편소설 '내 아버지 김홍도'는 김홍도라는 당대 최고 화가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 그림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김양기가 어째서 화원의 길을 걷지 않았는지, 화원의 길을 가는 대신 어떤 길을 갔는지 추적하는 작품이다.
아버지 김홍도와 아들 김양기가 나눈 대화와 당시의 이야기들을 축으로 화원으로 살았던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이 화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는지, 아들 김양기는 화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무슨 이유로 거두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 '내 아버지 김홍도'는 김홍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김양기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 김홍도는 아들 김양기의 삶을 설명하는 배경 혹은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김홍도는 아들에게 '화원이 되지 말고 화가가 되어라'고 했다. 그려야 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그리고 싶은 그림' '자기 내면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거의 평생 화원으로 살면서 '그리고 싶은 그림' 대신 '그려야 하는 그림'을 그렸던 아버지가 재능이 뛰어난 아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다.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작품에 완전하게 몰입한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상 '전업작가'일수록 '예술의 길'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밥벌이의 방편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밥벌이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소리'(예술작품)를 쏟아내기보다는 수요자의 요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림'이 '취향'인 사람은 거의 완성한 그림이라도 얼마든지 찢어버릴 수 있지만, '그림'이 '밥'인 사람은 그럴 수 없다. 그림이 취향인 사람은 얼마든지 작품에 까다로울 수 있지만, 그림이 밥인 사람은 까탈을 부리기 어렵다.
'예술가'는 신명이 일어날 때만 춤을 추지만, '직업 춤꾼'은 신명과 무관하게 춤을 춰야 한다. 예술이 푸대접받는 세상에서 재능 있는 예술가는 불행하다. 김홍도와 그의 아들 김양기의 삶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180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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