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평소도(小平小道)/ 김상문 지음/ 아이케이 펴냄
'그(덩샤오핑)는 저녁을 먹은 후 마당을 산보하기 시작했다. 작은 건물 주위를 한 발짝, 한 발짝, 한 바퀴, 한 바퀴 걸었다. 발걸음은 빨랐지만 침착했다. 그는 걸으면서 사색했다. 눈앞에 닥친 생활의 어려움이나 개인의 정치적 기회, 인연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혁명의 감동적인 장면, 당과 국가가 경험해온 평탄하지 않았던 길, 성공을 통해 체험한 화려함과 그 뒤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교훈 등을 끊임없이 사색했다. '-본문 114, 115쪽-
중국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은 1969년 66세의 나이에 노동자로 추락해 난창(南昌)에서 하방(下放) 생활을 시작했다. 3년 4개월의 하방기간 동안 그는 중국 인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하루는 종일 누워 지내는 큰아들에게 소일거리를 주려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 아들이 대학에서 라디오나 가전제품 수리를 배웠으니 집에 고장 난 라디오 같은 것이 있으면 가져오시오'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작업반장은 '먹고사는 문제가 이렇게 힘든 데 무슨 돈이 있어 라디오를 사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말에 덩샤오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민을 위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연지 20년이 넘었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라디오 한 대조차 살 수 없을 만큼 비참했던 것이다. 지도자로 나라를 이끌었던 그에게 한없는 후회와 비통함이 몰려왔다.
하방 시절 덩샤오핑은 공장 근처의 2㎞ 소로(小路)를 걸으며 중국의 앞날을 구상했다. 구름 위에서가 아니라 인민의 위치에서 중국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과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후회와 반성 속에서 덩샤오핑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뇌했다. 그 시절 걸었던 '소로'가 바로 '소평소도'(小平小道)다.
덩샤오핑이 난창에서 하방생활을 하는 동안 베이징에서는 정치적 회오리가 지나갔다. 문화대혁명이 폐해와 후유증을 남긴 채 실패로 끝나자 마오쩌뚱은 새로운 변화를 숙고하게 되었다. 마오는 덩샤오핑을 베이징으로 불렀다. 문화혁명으로 타도대상이 된지 6년 만이며, 난창에 유배된 지 3년 만으로 그의 나이 70세였다.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난창에서 각오했던 대로 경제건설을 목표로 정했다. 실천방법으로는 개혁과 개방을 선택했다. 잠자던 중국은 이때부터 경제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가난이 사회주의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면 자본주의보다 잘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중국을 끌고 그 길을 갔다.
덩샤오핑이 국민이 먹고 사는 데 얼마나 매달렸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가진 대화가 있다.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덩샤오핑은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가 어떻게 사회주의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사회주의 경제의 상징어인 '계획'과 자본주의 경제의 상징어인 '시장'을 융합해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창출해냈다.
그러나 덩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독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죽는 날까지 강조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그는 '중국이 미국처럼 자주 선거를 하고, 삼권분립을 하면 1년 365일 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그런 혼란 속에서는 국력을 키우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할 수 없다. 중국에는 중국의 현실이 있으며, 공산당 독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독재는 중국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 1989년 톈안먼 사태의 촉매가 되었다. 이 책은 오늘의 중국을 설계한 덩샤오핑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의 행적, 의지, 정치생활, 일화와 명언, 외교방침 등을 아우른다.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250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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