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고층 건물 폭력에 저항…멈추어진 시간 속에 활짝 핀 '들꽃'
나는 오늘 작은 상업건축물 하나와 함께 우리 도시 건축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갑자기 건축의 폭력성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폭력이라는 단어는 어떤 불법적인 의미의 물리적인 힘 또는 강제력 등으로 해석되어 지지만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개인에게 전달되는 힘도 때로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건축의 폭력성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도시에 존재해왔고 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물들은 그냥 그렇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도시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스페인의 거장 가우디의 작품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로 속삭이는 건축물에서 선유도 공원과 같이 자기를 낮추며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건축물 그리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건축물도 있다. 하지만 많은 건축물이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도시의 곳곳에 거대한 바벨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 무자비한 폭력의 주범이라면 제도의 모순과 과정의 불투명 속에 지어진 많은 공공 건축물들 그리고 경제적 이유라는 변명 하에 무책임하게 도시를 채운 수많은 민간 건축물들은 폭력의 공범쯤 될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미 우리 주변에 들어선 폭력성을 지닌 건축물들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감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해지는 건축의 폭력성은 어쩌면 너무 일상화되어 우리 스스로 무감각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상화된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번쩍이는 도시에 들꽃처럼 작고 수수한 건축물이 새로이 들어섰다. 이름도 들꽃처럼 싱그럽다. '마들렌 상점'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이 조성되어 온 수성구 두산동 주변, 자본주의의 흥하고 망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들안길이 수성못과 만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오면 10차선 넓은 도로변에 거친 모습으로 무심히 서 있는 마들렌 상점을 만날 수 있다. 반짝거리는 유리와 매끈거리는 알루미늄 패널로 치장한 현대적 건물들과 달리 이 건물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거친 콘크리트의 옷을 입고 있다. 미끄러운 기름기를 빼고 군더더기 없이 서 있는 상점은 어여쁘게 가꾸어진 꽃이라기보다는 무책임한 도시의 획일화된 폭력적 질서에 항변하듯 들판에 스스로 피어나는 들꽃 같은 건물이다.
그래서 이 건물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들꽃처럼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 거친 겉모습과 달리 상점의 정면 창을 통해 살짝 보이는 그 속살은 정갈하다. 또한 마들렌 상점에는 극적인 체험을 요구하는 공간이 없다. 건물의 규모도 작거니와 가구점이라는 요구를 담아야 하기에 그 기능에 충실한 내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롯이 그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 같지는 않다. 마치 작은 갤러리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실제로 갤러리의 용도로 쓰여도 괜찮을 듯하다. 상업적 기능을 충실히 만족시키면서도 작은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하려는 건축가의 고민이 내부 계단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 작은 상점건물이지만 들어오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가운데 계단을 단지 이동의 통로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계단 가운데 참을 천정에 매달아 띄움으로써 건물의 위아래 층을 시각적으로 통하게 하는 동시에 제품 전시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상점은 외부의 모습과 달리 내부공간에 뜻밖의 배려를 심어 놓았다. 마치 들꽃의 진한 향기처럼. 상점의 판매 가구 역시 상점 건물을 닮았다. 아니, 건물이 상점에 담을 가구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소나무로 만들어진 마들렌 상점의 가구 역시 튀지 않는 모습으로 소박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건물과 무척이나 어울린다. 갤러리 같은 상점을 경험하고 만나는 3층의 야외 테라스 공간은 이 건물을 방문하는 이에게 또 다른 매력을 보여 준다. 테라스에서 보는 수성못의 전경은 들길 끝에 만나는 작은 언덕이 주는 풍경과도 같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도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테라스 공간을 넣은 것은 상점의 무심한 모습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었으리라.
다시 돌아와 건물 앞에 선다. 침묵하는 두 개의 벽 사이로 열린 작은 하늘, 시간이 멈춘듯하다. 단지 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단풍나무만이 계절의 흐름을 말해준다. 화려함과 미끈거림의 폭력성을 가진 건축 집단의 광기 속에 마들렌 상점이 주는 침묵은 속물성과 허세를 거부하는 20세기 초반 유럽 청년건축가들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폭력에 굴하지 않고 건축으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상주의자들의 정신을 오늘 우리 도시 한 모퉁이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어 나는 기쁘다. 척박한 땅을 뚫고 흐드러지게 피는 들꽃처럼 이 건물이 우리 도시의 폭력적 모습을 바꿀 출발점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건물을 설계한 디오건축 백진현 건축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조극래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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