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베를린 장벽과 통일 대박

입력 2014-02-27 10:59:47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25년 전이었다.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동독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1989년 9월 1만 명이 넘는 동독 주민들이 느슨해진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가려다 적발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송됐다. 이들은 동독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서독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다. 부다페스트뿐만 아니라 프라하, 바르샤바 등에도 동독 난민들이 넘쳐났다. 이를 계기로 동독에선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동독의 최고 지도자 호네커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호네커의 뒤를 이은 공산당 서기 크렌츠는 난민들의 서독 자유 방문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방침은 동독 정부가 서독 방문을 '즉각' 허용키로 했다는 언론 오보로 이어졌다. 수많은 동독 주민들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서독 국경으로 향했다.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했던 동독 국경경비대는 이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위와 오보로 시작된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공식적으로 1989년 11월 9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장벽 전체가 허물어진 것은 이보다 한참 뒤였다. 이날은 동서독 주민들이 망치와 곡괭이 등을 들고 높이 3.6m, 폭 1.2m의 장벽을 부수기 시작한 상징적인 날이다. 동서 베를린을 갈랐던 장벽은 46㎞였고, 서베를린 외곽을 둘러싼 장벽은 156㎞에 달했다. 동'서독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은 그해 12월 22일에야 열렸다. 동독 정부가 공식적으로 장벽 철거를 시작한 것은 이듬해 6월 13일이었다. 독일 통일은 1990년 10월 3일 마무리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독일 통일의 완성까지 꼭 329일이 걸렸다.

오늘날 독일은 유럽의 중심 국가로 다시 우뚝 섰다. 전범 국가의 이미지는 확실히 벗어던졌다. 국제 평화에 이바지 하는 모범 국가로 거듭나 있다. 1990년 독일 통일 전 자유총선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에서 총리로 당선된 데메지에르 전 총리는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번영을 구가하는 독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은 어느 날 들어섰다. 1961년 8월 12일 자정을 기해 동독군과 경찰이 느닷없이 국경을 폐쇄하고 철조망을 설치한 것이 시작이다. 이 조치로 동'서독 간 주민 왕래가 불가능해졌고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서베를린은 졸지에 육지 속의 섬으로 전락했다. 이 장벽은 1965년 콘크리트로 대체됐고 1975년에는 무너질 당시의 장벽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동'서독 주민 간 이별은 짧았다. 1963년 동서독은 인도적 사안과 이념 문제를 분리한다는 방침에 합의했다. 통행증 협약을 체결, 이산가족의 만남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듬해 동독 정부는 은퇴 고령자에 한해 서독의 친인척 방문도 허가했다. 동독의 은퇴 고령자는 최장 30일까지 서독 체류가 허용됐다. 서독인들의 동독 방문은 관광 목적까지 확대돼, 최장 45일간 체류가 가능해졌다. 1972년 이후 통일까지 동독을 찾은 서독인은 연평균 300여만 명에 달했다. 서독을 찾은 동독인도 연평균 140여만 명에 이르렀다. 서독 특파원이 동독에 상주했고 동독 특파원은 서독에 머물렀다. 서독 방송을 통해 동독 주민들은 그들의 세상 외에 더 나은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일은 통일됐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다. 내년이면 분단 70년이다. 한반도를 가로질러 DMZ가 들어선 지 올해로 61년이다. 남'북은 여전히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산기족 상봉은커녕 서신 왕래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고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독일과 한국이 다르다지만 통일 독일을 이끈 힘이 동독의 변화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한반도의 통일도 결국 남한이 아닌 북한이 변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다. 서독이 아무런 일도 않고 통일을 맞은 것이 아니듯 남한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고언은 새길 만하다. "북한 주민들이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점을 알도록 한국 정부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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