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일생의 신념
박정희 대통령만큼 드라마틱한 일생을 산 지도자도 흔하지 않다. 식민지 시기와 전란(戰亂), 가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닥치며 대한민국 초석을 다지는 등 격동의 삶을 살았다. 태어남과 죽음에서도 박 대통령은 범인(凡人)들과는 달랐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모진 고초를 겪으며 태어난 박 대통령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다.
◆생즉사 사즉생
마흔다섯이란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한 박정희 대통령의 어머니는 아기를 지우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시골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식대로 간장을 한 사발이나 마시고 앓아눕고, 섬돌에서 뛰어내려 보기도 하고, 장작더미 위에서 곤두박질쳐 보기도 했다. 낙태를 시키려 디딜방아의 머리를 배에다 대고 뒤로 자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배 속의 아기는 모진 시련을 이겨내고 세상에 태어났다. 배 속에서부터 생사의 문턱을 넘나든 영향인지 박 대통령은 남다른 사생관(死生觀)을 가졌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인도교에서의 일화다.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해병여단 제2중대는 16일 새벽, 한강 인도교로 진입했다. 트럭 두 대를 여덟 팔 자로 배치한 헌병들이 제지하고 나섰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해병 6명과 상대방 헌병 3명이 부상했다. 총알이 스쳐가는 와중에 박정희 장군이 지프에서 내렸다. 그는 상체를 숙이지도 않은 채 한강 다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걸어가는 박정희 장군 곁으로 총알이 쌩쌩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총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박 장군이 다리 난간을 잡고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주사위는 던져졌어!" 예상하지 못했던 저항에 흔들리던 장병들은 용기와 확신을 되찾았다. 그들은 다시금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에 운명을 맡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남 앞에서는 부끄럼을 타고 누가 면전에서 칭찬을 하면 쑥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육영수 여사와 선을 보러 갈 때는 가슴이 떨려 소주를 마시고 갔다. 그러나 죽음과 대면할 때는 의연했다. 여순반란 사건 이후 1949년 군 내 남로당 조직 사건에 연루'체포돼 전기고문을 당하는 등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 박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이 말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이 날아와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실려간 뒤에도 박 대통령은 연설을 계속했다. "여러분 하던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중단했던 광복절 기념사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 연설을 이어나갔다. 당황하거나 겁먹은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워싱턴 포스트의 돈 오버도퍼 기자는 "그날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문세광의 총격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연설을 재개한 것이다. 아내가 총에 맞고 실려 나갔는데도 연설을 계속하다니, 그것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우리 미국인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이해도 가질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갑제 씨는 박정희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잡고도 초등학생과 같은 순수한 정신을 유지한 인물이라고 했다. "순진함은 물정을 모를 때의 마음 상태이고 순수한 것은 이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다 겪고 나서도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 청탁(淸濁)을 다 들이마시되 맑은 혼(魂)을 유지하는 자세이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박 대통령이란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박 대통령은 죽음 앞에서 초인적 모습을 보였다.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총을 쏜 후 박 대통령은 "뭣들 하는 거야!"란 한마디를 외친 후 그냥 눈을 감고 정좌한 채 가만히 있다가 김재규의 총탄을 가슴으로 받았다. 실내 화장실로 피했던 차지철이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만 내밀고는 "각하,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박 대통령은 선혈을 쏟으면서 "난 괜찮아…"라고 했다. 이어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란 주위의 물음에 "응 나는 괜찮아…"라고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나는 괜찮아"라는 박 대통령의 생전 마지막 말의 뉘앙스가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여기를 빨리 피하라"는 뜻이었다고 했다.
뜻밖의 서거로 생전에 유언을 남기지 못한 박 대통령은 1963년에 나온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삶의 지향점과 철학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평생 소망으로 '소박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 독립된 한국의 창건'이라고 했다. "본인이 특권 계층, 파벌적 계보를 부정하고 군림사회를 증오하는 소이(所以)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人情)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박 대통령의 평소 독백과 함께 그의 삶을 웅변하는 글귀가 아닐까 싶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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