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편지] 불량 유전자로 살아가기

입력 2014-02-24 07:47:39

호스피스 의사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죽음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근거 있는 의학 정보를 모아 실천하는 일이었다. 의사들은 암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함께 살면 된다고 말하지만, 호스피스 의사가 보는 암은 결코 친절한 친구가 아니었다.

2012년 한 해, 전 세계에서 8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암으로 삶을 마감했다. 내 어머니도 그들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하루에 3시간은 꼭 걸었고, 채소와 과일을 즐겨 드셨다. 라이코펜이 풍부한 붉은 토마토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챙겼다. 그럼에도 폐암에 걸렸다. 처음 얼마간은 억울한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셨다. 나는 지켜오던 암 예방 식생활과 걷기운동을 팽개쳐버렸다. 가족 중에 두 명이나 암 환자가 있으니 식생활로 암을 예방하는 것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유전자가 나쁘니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어머니와 비슷한 환자가 있었다. 멋진 근육질의 중년 남자였는데 수술도 힘든 말기 위암에 걸렸다. 그의 부인은 "뭐 하러 놀지도 못하고 헬스는 30년이나 밤낮으로 했던고"라고 하소연했다.

어머니처럼 아무리 먹는 것을 조심해도 암에 걸릴 수 있고, 사지 멀쩡한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 이런 불량 유전자를 안고 조바심 내면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의 저자이자 자살학의 대가인 토머스 조이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심리학자의 길을 택했던 그는 아버지의 자살을 겪었다.

막막한 슬픔 속에서 죄책감과 그리움, 자살자 유족에게 쏟아지는 숱한 편견과 싸워야 했다. "자살은 유전 아니냐?"며 그를 이상하게 보는 친구도 있었고, 자살을 연구하는 동료조차 힘든 상황을 무시했다. 조이너 교수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일수록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중요한 사실은 가족 중에 정신병 환자가 있더라도 일반인보다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 반드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가 모두 환자인 경우라도 자녀는 멀쩡할 수 있고, 가족력이 없어도 발병할 수 있다.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다고 불량 유전자를 탓하기 전에, 알고 있는 지식으로 건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의학정보에 절대 신뢰를 가져서도 곤란하다. 현대의학이 수명을 늘리기는 했지만 영원한 삶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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