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입력 2014-02-22 07:33:15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가 실린 심수봉의 1984년 앨범

한국인의 회식문화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2차 노래방행은 필수이다. 노래방은 음주에 가무를 더할 수 있는 보다 자유로운 장소이다. 어느새 한국인의 술 문화에 가무는 분위기를 돋우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술을 마셨는데 노래방에 가지 않고 헤어진다면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가무를 즐겼다고 하니 고래로부터 노래와 춤을 즐기는 문화는 한국인의 뼛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유전인자인 것 같다.

노래방에 가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기 차트에 올라 있는 곡 중의 하나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이다. 속되고 진부하기 그지없는 제목인 것 같은데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가사의 맥락이 주는 진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 하루 하늘만 바라보다/ 눈물 지우며 힘없이 돌아오네/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아 아아~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중에서도 남녀의 사랑은 인류를 존속시켜주는 가장 위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여기에서부터 온갖 복잡 미묘한 사건 사고가 펼쳐지고 흥미진진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와 문학, 예술이 이 사랑을 중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사랑만큼 흔하고 진부한 주제도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 시대보다 더 넘치는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천지사방에서 사랑을 외치지만 그것은 그만큼 진짜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흥얼거리다 보면 이 노래가 고려 시가 '서경별곡'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대중가요에서 항구나 포구, 공항은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이별의 장소로서 기능한다. 서경별곡 또한 대동강을 앞에 두고 이별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떠나는 연인을 간절히 붙잡아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서 그 남자가 새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연인을 질투하는 안타까운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 읽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랑이란 그저 좋기만 한 1차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한 무엇이라는 사실이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고. 그 말에 전적 동의한다. 원래 수컷은 자신의 DNA를 다음 세대에 퍼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졌다. 해방 전후와 1950, 60년대에 나왔던 대중가요에서도 마도로스와 항구를 소재로 하는 노래들이 많았다. 새로운 항구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멋쟁이 마도로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항구마다 새로운 여성들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들은 그 시대 남성들의 멋이고 풍류였다.

대중가요는 한 시대를 살아온 대중의 공통적 사고와 의식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시대가 바뀌어도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과 날카로운 질투의 강도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웃어버리는'이라든가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서 웃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에 오면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 인연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몰라서 발버둥치며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 만남과 이별,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물질과 정신, 부와 가난, 우리 보통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분법의 세계에 매여 한 치 앞을 모르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영처 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