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관광 굴뚝에 피는 관광의 꽃] ⑧독일 루르(Ruhr)공업지대

입력 2014-02-19 07:16:38

폐광 갱도가 박물관·문화공간으로…산업 유산의 '도시 허브' 변신

독일 북서쪽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루르(Ruhr)공업지대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독일 경제의 심장이었다. 1970년대까지 루르공업지대는 엠셔강과 모젤강 등 라인강 지류를 활용한 물류 운송을 토대로 석탄'철강산업의 유럽 최대 생산기지로 이름을 날렸다. 독일로 파송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주로 일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석탄산업이 쇠락하면서 지역 전체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탄광과 제철소는 문을 닫거나 타 지역으로 이전했고, 지역 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졌다. 절박한 위기 속에서 루르지역 엠셔강 유역에 접한 17개 도시는 녹슨 산업유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고 폐쇄된 산업시설들을 지역적 특성과 역사가 깃든 전시'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1989년부터 추진된 '엠셔 파크 프로젝트'는 루르 지역을 혁신적인 건축문화와 예술적 창조성이 가미된 공간으로 부활시켰다. 2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루르 지역은 지난 2010년 EU가 선정하는 '유럽 문화수도'에 선정됐다.

◆뒤스부르크-노르트 랜드샤프트파크

이달 12일 오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 북쪽.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 넘게 아우토반을 달린 뒤 좁은 도심을 통과하면 붉게 물든 제철공장을 만난다. 1901년 건설된 독일 최초의 철강회사 티센의 옛 제철소 건물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철강산업을 이끌던 이곳은 1985년 철강공장이 이전하면서 녹슨 건물만 남았다.

공장 부지 안으로 들어가자 용광로를 운반하던 철로가 남아있고, 녹슨 객차는 초록빛 이끼에 덮여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제철소 건물 주변에는 수십 년 전 사용하던 녹슨 기계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철과 석탄의 냄새가 짙게 남아 있었다.

스산했던 공장은 지난 1994년 공원으로 변신했다. 뒤스부르크-노르트 랜드샤프트파크다. 깨끗한 박물관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유산으로 재활용된 것. 100m 깊이의 가스탱크는 다이버 잠수훈련장으로 바뀌었고, 제철소는 영화관과 콘서트홀로 바뀌었다. 산더미처럼 폐석 더미를 쌓아두던 곳은 전망대와 실내스키장으로 개조됐다. 이곳에는 연평균 100만 명이 찾는다.

공단 내에 전력을 공급하던 발전소를 개조한 크래프트홀(전시행사장)은 최대 4천2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6천㎡ 규모의 크래프트홀은 옛 건물의 외골격과 천장을 그대로 활용했고, 음향과 조명시설을 보강했다.

산책을 나온 주민들은 천천히 공원을 돌며 이색적인 풍경을 만끽했다. 70m 높이의 암벽등반 코스에는 통나무와 사다리를 매달아 건물 벽을 등반할 수 있도록 했다. 기둥 사이에는 아찔한 흔들다리가 걸려 있었다.

공장 안에는 철광석을 제련하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철광석을 운반하던 철로도 그대로 보존했고, 바람을 이용해 16m 높이로 물을 끌어올리던 대형 바람개비도 그대로 살렸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로잔느 슈리즈버(23'여) 씨는 "산업 유산이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주변 경관과 오래된 공장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연중 260일가량 각종 행사가 열린다. 특히 여름이 되면 공장 건물은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오후 10시부터 영화를 상영하는데 해 질 녘부터 모여든 사람들은 주변의 이동식 식당이나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름밤의 정취를 즐긴다. 티켓 판매율이 92%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공원 개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래된 시설물이다 보니 안전시설을 갖춘 뒤에야 개방하기 때문이다. 이곳 클라우디아 칼리노브스키 홍보담당자는 "건물 부지와 제철소 건물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대해 반대도 많았지만 미래 세대에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준다는 점이 주효했다"며 "올해도 포토 및 어드벤처 전시회를 여는 등 공원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센 졸페라인

뒤스부르크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에센시 졸페라인이다. 옛 산업시설을 문화 관련 시설로 변경한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 산업유산 루트의 연결고리이자 유럽 산업유산 루트의 연결점이다.

12일 찾은 졸페라인은 붉은빛을 띤 8층 건물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묘한 대조를 이뤘다. 졸페라인 광산은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광산이었다. 1884년부터 100년간 운영되던 광산은 1986년 문을 닫은 이후 10년간이나 죽은 땅으로 방치됐다.

숨죽였던 광산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광산의 거대한 굴뚝이 있는 보일러 하우스를 산업디자인의 중심인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개조하며 되살아났다. 이후 엠셔파크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박물관과 극장, 디자인학교 등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졸페라인 광산은 주 채탄시설과 수직 갱도 현장을 보존한 '수갱 12'구역과 1'2'8구역, 코크스 가공공장인 코케라이(Kokerei) 등 세 구역으로 구성된다.

먼저 수갱 12구역의 루르박물관을 찾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철골 유리박스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는 수직 갱도 설비와 세련된 전시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건물은 층이 아닌 높이로 구분된다. 전체 45m 높이의 건물을 40m, 30m, 12m, 6m 층으로 나누는 식이다.

박물관 안에는 체험학습을 나온 10대 청소년들로 왁자지껄했다. 학생들은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전시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박물관에는 에센 지역의 역사부터 매머드와 공룡 화석, 구석기 유골과 게르만 관련 유물인 도끼와 삽, 토기, 화살촉 등 각종 유물이 즐비했다. 연대별 산업 발전 과정과 나치 포스터, 전쟁 관련 유물, 현대 문명 발달사 등도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1990년부터 2012년까지 2억9천500만유로가 투입됐다.

연간 150만 명이 찾는 이곳은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졸페라인은 2천168개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그 가운데 1천62개는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됐다. 졸페라인의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이나 식당에도 일자리 1천450개가 생겨났다.

에센에서 나고 자랐다는 안젤리카 랑에(58'여) 씨는 "이곳이 탄광이었을 때는 창문을 열거나 빨래를 널 수 없을 정도로 석탄가루가 날렸다"며 "문화행사 시설로 거듭나면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2층 계단에 난 문을 열면 매달린 아우디 자동차의 차체가 시선을 압도했다. 붉은 탄광 설비를 따라 첨단 디자인 제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은 2천여 점의 제품을 선보인다.

녹슨 강철 구조물 사이로 빼어난 현대적 디자인의 제품들이 반짝거렸다. 자전거와 가구, 휴대전화, 경비행기 등 온갖 현대 산업의 첨단 디자인이 망라돼 있어 눈길을 떼기 힘들 정도다.

마리 크리스틴 사센베르크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역사적인 건물과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제품들이 조화를 이루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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