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54년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했던 나의 연인, '춤'

입력 2014-02-15 08:00:00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신지아 지음/ 샨티 펴냄

50여 년 인생을 춤으로 산 여인이 있다. 올해 나이 쉰넷인 저자 신지아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전공했지만 대학생 시절 우연히 김숙자 선생의 도살풀이춤 공연을 보고 춤에 빠져든다. 김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지만 도무지 재능을 찾을 수 없었던 자신에게 절망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인도 음악과 명상을 알게 되고, 인도행을 선택한다.

그녀는 인도로 간 지 수년 만에 국립 카탁무용학교에 들어갔고, 인도 무용의 대가인 마하라지 선생으로부터 '박티'(신을 향한 순수한 헌신)를 가진 유일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듣는다. 박티 없이는 춤의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니 최고의 찬사다. 이후 카탁 무용가로 인정받은 그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며 무용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이탈리아 출신 한 히피 청년이 나타난다. 만난 지 겨우 몇 시간 만에 청혼을 받은 그녀는 운명의 힘에 이끌리듯 결혼한다. 춤을 통해 얻을 것은 모두 얻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내의 길, 어머니의 길을 위해 춤꾼의 인생을 내려놓는다.

이후 16년, 그녀는 이탈리아를 거쳐 멕시코에 정착한다. 일 아니면 잠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다. "춤추며 공연할 때 몸에 두르던 보석은 다 어디 있니?" 그녀가 정작 잃어버린 것은 보석이 아니라 춤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던 것이었다. 그녀는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춤 의상을 꺼내 입고, 이번에는 카탁이 아니라 페르시아 시인 루미를 통해 알게 된 수피춤을 추기 시작한다. 수피춤을 배운지 석 달 만에 첫 공연을 갖는다. 춤은 다시 그녀의 삶 속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부부 사이에서 친구 사이로 바뀐 것이다. "결혼과 함께 가정에 묻히는 게 여자의 삶이라면 나는 거부하겠어. 나는 이제껏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살았지만 정작 표현하지는 못했지.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는 말을 할 시간이 된 것 같아." 우여곡절 끝에 법적으로 헤어졌지만 지금도 남편은 그녀와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며 춤의 에너지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젊은 시절에 만난 도살품이춤부터, 삶의 쓰고 단맛을 모두 겪고 난 뒤 만난 수피춤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춤으로 어떻게 노력하고, 기다리고, 사랑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워지는지를 담담하게 말해 준다. 384쪽, 1만6천원.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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