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입력 2014-02-14 07:00:40

"박 대통령 '통일 대박론'·김정은 '중대제안' 새 남북관계의 시작"

지난 1월 16일 북한이 남북 간 상호 비방'중상 행위 등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자고 우리 정부에 '중대제안'을 내놓은 뒤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있는 데 이어 12일 7년 만에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의 기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관심 있게 봐야 할 것은 북한(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그다음에 '중대제안' 형식으로 최고 지도자의 특명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대남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 그것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은 '이전 시대 남북 사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겠다. 좀 스케일이 크다'면서 남북관계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역대 지도자들의 책임을 나열하면서 자기들 선대 수령들도 남북 사이의 악순환에 책임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이전에는 (북한 측이) 금강산 관광재개와 고리를 걸어놓았었는데 이번에는 한미 군사훈련이나 관광재개와 관련해서 특별한 언급 없이 먼저 제의하고 우리와 곧바로 합의하지 않았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북한학자인 고유환(57)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새해 들어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중대제안에 이은 유화 제스처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기존 남북관계의 틀을 깨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고 분석했다.

7년 만에 남북 고위급 접촉이 재개되기 직전인 10일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성사 여부에 대해서도 "일단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자고 먼저 제안했고, 이산가족 상봉 일정이 우리 키리졸브 훈련 일정과도 겹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합의했다. 군사훈련과 관계없이 진행된다고 보고 시작했다. 북한이 무산시켰을 때는 신년 초부터 주장한 큰 틀의 남북관계 개선에 막대한 장애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장성택 숙청사태'에 대해서도 "김정은 시대 신'구 엘리트 간의 권력충돌이며, 오히려 김정은 체재의 권력 공고화로 본다"며 대북강경파들의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북한은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다. 유일체제의 속성상 장성택과 같은 분파행위는 체제의 논리에 따라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장성택 숙청은 시간문제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방법이 잔인하고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것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숙청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김정일이 뇌졸중 이후인 2008년 8월 이후 권력 공백기 때 과도 인물로서 장성택의 권한이 상당히 세졌다. 실권도 세지고, 주변에 사람도 몰렸는데 김정은 권력이 강화된 이후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장성택은) 명예직 정도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신'구 권력 엘리트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장성택 중심의 구세대 인물들이 김정은 시대에 급부상한 신진 엘리트들에 장애가 된 것이다.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 측이 단순히 국면전환용 차원이 아니라, 멀리 내다볼 때 장성택 일파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권력 구축이 어렵다고 본 것 같아서 빚어진 일이다. 어쨌든 친정체제 강화로 봐야 한다. 북한의 유화 제스처는 단기적인 국면전환용이 아니라 뭔가 큰 그림을 갖고 있다. 북한 스스로 대결의 악순환을 끊는 차원에서의 어떤 움직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기본적으로 흡수통일론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사실 이명박정부 때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주된 이유가 북한 급변사태론이었다. 김정일이 뇌졸중에 걸린 이후 북한이 오래 못 버틸 것이다. 핵문제도 (북한이) 붕괴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인데 굳이 길게 협상하고 보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이전 민주정부 10년도 문제지만 이명박정부의 대북강경정책도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제3의 길을 가겠다고 내놓은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다가 장성택 숙청을 보면서 또 급변사태론으로 기울었다.

그러다가 박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내놓자 급변사태론의 연장선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그런데 통일 대박론은 우리 사회 일각의 통일 기피론이나 회의론을 잠재우면서 통일담론을 주도하는 의미가 있다. 사실 대선과정과 최근까지도 '종북 프레임'으로 한동안 재미를 봤지만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있는가?

"당장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어쨌든 북한은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정권과 체제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핵을 버리는 것은 정권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북한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당의 기본노선으로 채택, 천명했기 때문에 쉽게 핵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방치할 것인가.

이명박정부 때는 '선비핵화' 방침을 내놓고도 핵능력의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는 아주 의미있게 받아들일 부분이 핵 고도화를 막으면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핵능력 고도화를 막으면서 차차 비핵화를 하겠다는 식으로 인식이 바뀐 것은 다행이다.

시급한 것은 핵 능력 고도화를 막는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것이다. 동결하고 통제해놓고 시간을 두고 풀어야지,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이 북핵개발을 도왔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1, 2기의 핵을 가졌다고 추정하는 시기가 1990년대 초였다. 1993, 94년에 이미 북핵위기가 왔지 않느냐. 그 이후 향상된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는 동결을 시켰다. 동결시킨 것을 풀게 만들어 오히려 핵실험으로 가게 한 책임은 이명박정부에 있다. 그 전 정부들은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동결시켰다.

금강산 관광 등의 자금이 아니어도 핵개발에 우선순위로 자금이 갔을 것이다. 김영삼정부는 북한에 15만t의 쌀을 주지 않았나. 경수로 지원도 했다.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이라는 것은 평화적 이행전략이었는데, 그래서 이행을 위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비용을 '퍼주기'라고 비판한다면 하나도 주지 않고 압박한 이명박정부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정책이 갖고 있는 전략적 함의를 왜곡해서 만든 논리다. 예를 들어 동'서독도 서독이 동독에 엄청난 지원을 했다. 미국도 북한에 30억달러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필요에 따라서는 (북한에) 중유를 주고 식량도 줬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제기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일국가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은가.

"소위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족정체성과 국가정체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민족정체성인데. 북한은 혁명과 건설의 기본단위는 나라와 민족이라며 폐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우리 민족끼리 풀어야 한다'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포기하고 우리 민족제일주의를 내놓고 혁명과 건설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일찍이 세계화와 글로벌 정체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편입돼 오늘날과 같은 고도성장을 누리게 됐다. 거기에는 소위 '국가정체성',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흡수통일을 해야 하며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이 통일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3가지 정체성이 있다. 통일담론이 다시 부각되는 것은 민족정체성과 국가정체성이 혼재돼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이후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이라는 슬로건을 정해놓고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자주통일을 하고, 그 힘으로 평화번영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렵지 않은가.

"북한의 시장화도 시간문제다. 중국을 보면 안다. 북한의 시장화도 이미 상당수준 진전이 되고 있다. 북한 도시를 연구하고 있는데 함흥 평성 같은 곳에서는 주택업자가 집을 지어서 분양하고 있다. 평양도 15만달러 정도면 고급아파트를 산다고 한다. 자기가 아파트를 사서 리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갖지만 주택점유권은 분양이나 사유화가 가능하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고한 수령중심의 유일체제가 강고한 것 같지만, 변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밑으로부터의 시장화는 상당한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중앙공급체계가 붕괴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온 사람이나 북한 내 장마당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돈주'라는 형태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가가 되고 있다.

러시아도 과거 '아파라치키캐피탈리스트'라고 해서 당료 집단들이 이권을 독점, 나중에는 체제변화의 주동세력이 되었고, 체제전환이 이뤄지자 자본가 그룹이 된 적이 있다. 지금 북한도 그런 내부적인 초기단계의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

남북 간 교류협력을 하고 지원을 하자는 것도 시장과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위로부터의 붕괴가 쉽지 않으니 시장을 키워서 아래로부터 힘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변화도 시민사회가 형성돼 그들이 체제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동구에서는 시민사회가 있었다.

"북한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곧바로 갔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없다. 그것을 키우자는 것이다. '김대중식 햇볕정책'을 지속했다면 북한이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막 붕괴될 위험에 처해 통일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는데 노무현정부 들어 제동이 걸렸다. 되돌아갈 수 없을 때까지 확 끌어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다시 후퇴한 것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다시 하려고 하니까 이명박정부 5년을 경험한 북한으로서는 불신이 클 수밖에 없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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