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로 푼 한시] 石竹花 (석죽화) / 형양 정습명

입력 2014-02-06 14:02:10

보기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

예나 지금이나 모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진홍빛 모란은 보기만 해도 정겨움을 준다. 그래서 모란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사랑을 노래하고 인생을 속삭이게 했다. 그러나 시인은 일명 '석죽화'(石竹花)라고 불리는 패랭이꽃을 노래했다. 황량한 초야에 묻혀 피는 패랭이꽃이 모란보다 정이 깊은 꽃이라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진분홍 모란꽃을 사람들은 좋아하여

집안 뜰 가득 심어 정성들여 가꾸구나

황량한 초야에서도 좋은 꽃 핀 줄 알며.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세애목단홍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수지황초야 역유호화총

【한자와 어구】

世: 세상, 세상 사람들. 愛: 사랑하다. 牧丹: 모란꽃. 紅: 진홍빛. 栽培: 재배하다, 가꾸다. 滿: 가득하다. 院中: 집안에, 뜰안에.// 誰知: 누가 알 것인가, 누가 알리. 荒: 황량하다. 草野: 초야, 초야에 묻혀 살다. 亦: 또한, 그 역시. 有: 있다. 好花叢: 좋은 꽃의 떨기. 보기 좋은 한 떨기.

보기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石竹花)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1151)이다. 향공(鄕貢)으로 문과에 급제해 내시(內侍)에 처음 들어갔다. 인종의 유명을 받들어 다음 임금인 의종의 잘못을 거침없이 간(諫)하다가 결국 왕의 미움을 사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동문선'에 석죽화 등 3편의 시가 전해진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사람들 진분홍 모란을 좋아하여// 집안 뜰에 가득 심어 가꾸네// 누가 알리, 황량한 초야에도//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패랭이꽃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초야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해 세속에서 사랑받는 모란과 대비하고 있다. 패랭이꽃이라는 우리말 이름은 꽃송이의 생김새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시인은 패랭이꽃이 외진 곳에 피어 있어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진 임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후구로 이어지는 패랭이꽃은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향기는 밭두렁 나무의 바람에 전하네//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는 적고/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라고 읊었다.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애써 밝은 웃음을 짓는 여인의 얼굴이 생각난다. 핼쑥하면서도 홍조를 띤 다소 애잔한 꽃이라고 하겠다.

화자는 영물시에 뛰어났던 이규보(李奎報) 같은 시인까지도 이 꽃을 보고 평하기를 '영락(零落)하여 가을 날씨를 견디지 못하니, 죽(竹)이란 이름을 쓰기엔 외람되다'(飄零不耐秋, 爲竹能無濫)라고 읊었으니 시의 뜻을 알 만하다.

정습명(鄭襲明:?~1151년 3월 21일)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작가다. 본관은 영일이며 호(號)는 동하(東河), 형양(滎陽)이다. 글을 잘 써 향공(鄕貢)에 급제했으며 인종 조에 여러 번 벼슬에 올라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됐다. 관직은 추밀원지주사에 이르렀다. 포은 정몽주는 그의 10대손이다.

일찍부터 성격이 대범했고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 예종(睿宗) 때 내시(內侍)에 임명된 뒤 시 '석죽화'를 지었고, 이 시가 널리 알려져 예종이 특별 천거해 옥당(玉堂)에 제수됐다. 그 뒤에도 인종에게 인격과 학행을 인정받아 인종의 총애를 받았다.

의종의 태자(太子) 시절 스승이었으며, 삼국사기 편찬 감독관 중 한 사람으로 김부식, 김효충 등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에 참여했다. 하지만 의종의 비행과 향락을 거침없이 지적하고 질타하면서 왕의 미움을 받았다. 후에 의종의 뜻을 알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고, 왕은 무신정변으로 축출되며 뒤늦게 그를 찾았다고 한다. 경상북도 출신이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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