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 떨기의 행복을 위하여

입력 2014-02-05 11:16:37

무소유의 대명사 법정 스님이 한국에 있다면 고대 그리스에는 디오게네스가 있었다. 철학자인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것이라고는 커다란 도기 항아리 하나가 전부였다. 집이 없었던 디오게네스는 이 항아리 안에 들어가 살았으며, 옷도 없이 거의 헐벗은 채 구걸로 살아갔다. 그가 실천하며 살았던 삶의 기준은 소크라테스의 무소유 정신이었다. 그런 삶 속에서 행한 갖가지 기행으로 그는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 일화 중의 하나.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디오게네스는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대왕이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디오게네스는 팔꿈치로만 살짝 몸을 일으킨 채였다.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폐하께서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이네." "그런 후에 또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이지." "그다음은 또 무엇입니까?" "아마 온 세상을 정복하고 싶겠지." "온 세상을 정복한 후에는?" "그다음엔 좀 쉬며 즐겨야겠지."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

이번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디오게네스, 당신은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난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데 말이야." "폐하, 그러시다면 좀 옆으로 비켜서 주시겠습니까? 폐하의 그림자가 지금 제 햇볕을 가리고 있습니다."

일요일 한낮 집안 가득 들어온 햇살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디오게네스의 일화였다. 디오게네스는 황제가 줄 수 있는 영화나 보물보다 한 조각의 볕살에 더 행복을 느꼈을까.

디오게네스가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구걸로 이어간 끼니는 주린 배를 채워주기에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다른 일화에 의하면 그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이 물으면 '사람을 찾고 있소'라면서도 여전히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고 늘 대답했다니 그 고독감을 알 만하다. 게다가 동시대의 플라톤과는 앙숙으로 지냈다고 하니 그의 전체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보다는 고뇌가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에서는 안빈낙도하고 안분지족하는 그의 삶의 태도도 엿볼 수 있다.

조그만 창가에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도 삶의 행복일 수 있다. 게으른 휴일 한낮 집 안을 환하게 해주는 햇살은 휴식의 비타민이다.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남매의 이야기를 굳이 다시 떠올리지 않더라도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모두들 알고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행복을 돌아보고 생각하려 하지 않을 뿐.

그래서일까. 지난해 갤럽이 조사한 국가별 행복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52%만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57개국 중 34위에 올랐다는데, 그리 높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세계를 놀라게 한 수십 년간의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행복도가 경제적 풍요와 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은 학업 때문에 힘들고, 20대 청년들은 취업 때문에 삶이 힘겹다. 30'40대는 자녀 교육이 버겁고, 50대가 넘으면 노후도 불안하다.

하지만 주린 배가 괴롭히는 가운데서도 디오게네스는 한 줄기 햇살에서 안식을 찾지 않았는가. 등이 휘는 생활 속에도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는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버렸지만 올 한 해는 모두가 '행복 계획' 한 가지씩을 세웠으면 한다. 나의 행복, 가족의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정부의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도 국민행복시대 아닌가.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한 줄기 햇살을 찾아볼 때다.

한 달에 한 번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위해 1년간 읽을 책을 한 아름 사보는 것은 어떨까. 경상도 사내들에겐 약간 겸연쩍은 일이긴 하겠지만 아내를 위해 꽃 한 다발씩을 사들고 들어가는 것은?

각자 행복한 한 해를 위한 한 줄기 햇살을 준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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