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명문' 경복중서 한솥밥, 원민구 감독 3부자

입력 2014-01-30 07:39:32

막내 아들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고…"

대구 경복중 원민구 감독이 차남 태인 군의 타격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다. 왼쪽은 장남인 원태진 코치. 이상헌기자
대구 경복중 원민구 감독이 차남 태인 군의 타격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다. 왼쪽은 장남인 원태진 코치. 이상헌기자

원민구(57) 대구 경복중 야구부 감독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17년째 이끄는 경복중이 전국 중등부 최강 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든든한 아들 형제가 늘 곁에 있어서다. 같은 학교에서 코치를 맡은 태진(28), 1학년 선수로 뛰는 태인(14) 형제다. 부전자전이 적지않은 야구계이지만 삼부자(三父子)가 한 팀에서 땀 흘리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지난해 연말, 태진 씨가 결혼으로 분가하기 전까지 같은 집에 살았던 이들은 운동장에서 남남처럼 지낸다. 원 감독은 큰아들을 '원 코치'라고 부르고 둘째아들은 형을 '코치님', 아버지를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가족이라고 봐주는 건 애당초 금물이다. '특별 과외' 역시 없다.

심지어 태인 군은 아침에 훈련을 나올 때나 늦은 밤 귀가할 때도 아버지의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 모두 흔들림 없는 팀워크를 위해서다. 정철중(27) 경복중 야구부 코치는 "감독, 코치님이 종종 태인이를 다른 선수들보다 더 심하게 꾸짖기도 한다"며 "삼부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홍길동처럼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클 것 같지만, 사춘기인 태인 군의 불만은 오히려 다른 데 있었다.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형이 요령 피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서다. 대건고'영남대를 나온 원 감독은 청소년대표'대학 선발팀 출신이고, 태진 씨는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지만, 경기고 졸업 후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박찬호가 롤 모델이라는 태인 군은 "아버지에게 혼나면서 야구를 배운 형은 그나마 편하게 해주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엄하시다"며 "일요일에도 체력 보강을 위해 등산 가자고 할 때면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쉬는 동료가 너무 부러워진다"고 털어놓았다.

지역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최장수 감독으로 꼽히는 원 감독은 야구를 가업(家業)으로 이어갈 생각만 하면 흐뭇하다. 큰아들은 사업을 해보라는 권유에도 지도자로서 꽃을 피워보겠다며 박봉의 코치 자리를 스스로 선택했고, 막내는 벌써 장래 국가대표감으로 꼽힐 만큼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손자가 운동에 소질이 있으면 야구를 시키겠다는 약속을 며느리에게 받아뒀다는 것도 원 감독의 '자랑'이다.

3루수로 뛰었던 제일은행 야구단이 해체되면서 한때 은행원으로 변신하기도 했던 원 감독은 "평생 야구만 하고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인생"이라며 "운동을 하면 인성이 좋아지고 설혹 선수로 대성하지 못해도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갈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야구 예찬론을 폈다.

한편, 배영수, 박석민, 김상수, 이재학 등의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한 경복중은 지난해 KBO 총재배 전국중학야구대회 나눔리그에서 우승한 야구 명문이다. 2010년에는 제57회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제39회 전국소년체전(2연패)까지 제패한 바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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