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털어 수술비…비닐하우스서 생활
"부모님은 제 전부예요. 곁에 계셔주는 것만으로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대장암 말기 환자인 어머니 김화숙(가명'78) 씨와 교통사고로 투병 중인 아버지 윤기태(가명'78) 씨를 모시고 있는 딸 윤경숙(가명'49) 씨. 자신도 대사증후군과 신장 기능 저하로 약을 달고 살지만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돌본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대장암 판정에 이어 또다시 아버지의 교통사고 등 연이은 불운으로 비닐하우스에 터전을 잡았지만 윤 씨는 부모님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없다면 세상을 버렸을지도 모르죠. 경제적 상황은 힘들지만 부모님이 계시니깐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남부럽지 않았던 어린 시절
윤 씨는 아련한 표정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로선 흔치 않게 4년제 대학을 나와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사범대를 졸업하고 꽃집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윤 씨와 두 살 위 오빠의 어린 시절을 풍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이웃사람들이 부모님에게 '엘리트'라며 추켜세우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요. 언뜻 생각해도 중산층 이상의 넉넉한 가정이었어요. 집 안에는 항상 꽃 내음이 가득했죠."
불행은 중학생이던 오빠가 집을 나가면서 시작됐다. 사춘기를 겪으며 엇나가기 시작한 윤 씨의 오빠는 부모님과의 다툼 끝에 가출을 선택했고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낙천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잘 추슬렀고,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윤 씨는 20살에 지역 유명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번듯했던 직장에서 나와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는 몇 번의 사기를 당했고, 모아뒀던 돈 대부분을 잃었고 20년 가까이 운영해온 어머니의 꽃집도 닫아야 했다.
"어머니는 원망이 컸죠. 하지만 전 달랐어요. 지금까지 아버지 덕분에 대학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괜찮을 거란 확신도 있었거든요."
◆사업실패와 이혼, 아이들과의 생이별
1991년 윤 씨는 결혼으로 집을 떠났고,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작은 과수원을 차렸다. 예전만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생계를 꾸려갈 정도는 됐고, 집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윤 씨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꽃집에서 일을 도왔던 경험을 살려 조경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남은 건 빚뿐이었다. 사업 실패로 남편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결국 2002년에는 이혼까지 하게 됐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2학년인 딸이 있었지만 부양 능력이 없어 남편이 아이들을 데려갔다.
긍정적인 아버지를 닮아 크게 낙담하는 일이 없었던 윤 씨는 사업실패와 이혼, 아이들과의 이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혼 후 1년여 만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신장, 췌장 등 10여 개의 장기에 염증이 생겼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윤 씨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남편의 누나에게 연락했지만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신장이 한쪽은 퉁퉁 부었고, 한쪽은 기능을 못한 채 쪼그라든 상태였어요.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죠.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단 말에 시누이는 '아이들을 위해 혼자 조용히 죽어라'는 차가운 말만 했죠."
◆아픈 부모님, 교회 쪽방에서 지새는 밤
윤 씨는 죽으면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를 살린 건 부모님이었다. 60대의 아버지는 쇠약해지면서 청각장애를 얻었고,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살려낸 것.
윤 씨는 다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일도 시작했다. 하루 벌이였지만 그토록 좋아하던 나무를 심고 정원을 꾸미는 조경 일을 했고, 한 달에 10만원짜리 월세방이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윤 씨에게는 또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2012년 1월 어머니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모든 걸 다 잃고 부모님만이 삶의 이유였던 윤 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70대 후반 어머니의 몸 상태 때문에 의사는 수술을 권하지 않았지만, 윤 씨와 아버지는 가만히 서서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수술비와 치료비 때문에 윤 씨 가족은 월세방 대신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터전을 잡았다.
지난해 연말에는 폐지를 줍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아버지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람 좋고 항상 낙천적이던 아버지는 사고로 전신에 골절상을 입고 뇌에 손상을 입어 치매 증세와 비슷한 '섬망증세'까지 앓고 있다. 섬망증세로 혼자 소리를 지르고 돌발 행동을 하는 통에 윤 씨는 한시도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다.
당연히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보험은커녕 모아둔 돈 한 푼 없지만 부모님은 수십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 때문에, 윤 씨는 고학력자에 노동 능력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했다.
밤이 되면 윤 씨는 요양병원 옆 교회 쪽방에서 잠을 청한다. 가족이 함께 살던 비닐하우스는 요금미납으로 전기마저 끊긴 채 텅텅 비어 있다. 신장이 해독작용을 하지 못해 퉁퉁 부은 윤 씨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큰 수술을 잘 이겨내셨고, 아버지도 큰 사고에서 살아나셨으니 이런 게 기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누워있어야 하는 아버지의 기저귀 값도 없는 지금 상황이 안타깝고 자식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워요."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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