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파산제 도입…빚더미 지방 재정 '해법' 될까?

입력 2014-01-27 10:38:33

지역 의원들 공감대 형성…"지방 분권 침해" 반대 여론도

지방재정 부실이 국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일각에서 지방자치단체 파산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지자체 부실 사업으로 비난받는 서울 고척동 돔구장, 전남도 영광 F1 경기장, 용인 경전철 건설 관련 사업. 매일신문 DB
지방재정 부실이 국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일각에서 지방자치단체 파산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지자체 부실 사업으로 비난받는 서울 고척동 돔구장, 전남도 영광 F1 경기장, 용인 경전철 건설 관련 사업. 매일신문 DB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를 제안해 논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지역에선 지자체 파산제 도입 논란은 국세 위주인 세수 구조와 복지정책 등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부담하는 매칭비 등이 지방재정의 위기를 불러왔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어 도입 가능성은 미지수다.

◆방만 운영 막아줄 장치 필요

통계청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에 따르면 2013년 대구시 재정자립도(자치단체 예산 규모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 높을수록 재정수입 자체 충당능력이 높음)는 평균 51.8%로,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6위, 경북도는 평균 28%로 9개 도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 지자체들은 이처럼 재정자립도가 낮은 이유가 무리하게 복지정책을 추진한 중앙정부의 '책임 떠넘기기'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 정도인 불합리한 재정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국회의원들은 지자체의 이러한 주장이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보고 있다.

장윤석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영주)은 "재정자립도가 낮더라도 지원되는 국비와 합한 예산 규모에서 재정을 운용하면 되기 때문에 국세 일정 비율을 처음부터 지방 몫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정희수 국회의원(영천)도 "지방세 수입이 적어 지자체가 열악해진 건 아니다. 가정을 예로 들면, 수입이 200만원인 가정은 지출 상한을 200만원으로 잡아야 하는데 이를 넘겨 무리하게 소비를 한 경우와 같다"고 했다.

지자체장이 다시 선거에 입후보할 때 재정운용 상황을 선거공보에 기재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한성 국회의원(문경예천)은 "재선을 목적으로 단체장이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해 채무불능 상태에 빠지면 결국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은 지자체 파산제를 도입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지자체장이 재선을 위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거나 선심성 사업을 벌이는 등 지방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 경우에 대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주호영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대구 수성을)은 "물을 부어줘야 하지만 물이 새어 나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면 자치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중하게 도입해야

대구경북의 재선 이상 국회의원들은 지자체 파산제가 필요하지만, 도입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대구 북을)은 "지자체의 방만 운영을 막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규모, 지리적 위치 등 지역 특성과 파산 사유를 고려해 방만한 지자체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대구 동을)은 "열심히 일한 지자체까지 파산시키려는 제도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법정관리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파산에 이른 원인을 살펴야 하고, 파산제 외에 지방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김광림 국회의원(안동)은 "복지 확충 등 국가 정책 탓이라면 전국 242개 지자체의 사정이 같겠지만, 재정 소요가 큰 대회를 억지로 열었다가 재정 파탄에 이른 지자체는 '비교 형량'해야 한다"며 "파산제와 별도로 강원도 등에 '관광세'를 신설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게 자체 세수를 늘릴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 현실 외면해선 안 돼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정치적 자치에 성공했지만, 경제적 자치는 그렇지 못하다"며 "외국에서 시행한다고 해서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우리 지자체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자립도를 먼저 끌어올려 자생력을 확보하고 나서 파산제를 도입해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조원진 국회의원(대구 달서병)은 "제도가 도입된다면 부채 원인부터 조사해야겠지만, 지방 분권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에 미칠 영향, 지방공기업 부채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당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거나 공청회를 거쳐 공론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남대 김태일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도 부채 규모에 따라 지자체에 경고하고, 공채 발행이나 신규 사업을 못하게 하는 '재정위기단체지정' 제도가 있지만, 빚더미 지자체에 대한 강한 통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며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지방의 세입 구조부터 든든하게 해주는 지방재정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중앙정부의 개입보다 지방자치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지자체에 문제가 생길 때 지방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주민 참여를 높여 내부 견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권이나 자치권을 박탈하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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