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발 불굴의 집념…"어떻게 하면 된다" 대안까지 제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하면 된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국가 발전을 이뤄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적과 같은 국가 성장을 달성한 것과 더불어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일제강점기'전쟁 등을 거치며 국민 뇌리에 깊이 배어든 패배 의식을 떨쳐 버리고 '하면 된다'는 정신 개조에 성공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대의 목소리에 부응하다
1960, 70년대 대한민국의 화두는 경제 성장이었다. 다른 모든 면에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실패한 리더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이 같은 시대의 목소리, 요구에 제대로 부응한 것이 박 대통령이다.
다른 나라들이 격찬하는 경제 성장을 이뤄낸 비결을 여럿 들 수 있겠지만 지도자의 용기, 그리고 국민 모두의 용기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일컫는 용기는 '하면 된다'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지은 '나의 사랑 나의 조국'엔 그의 불퇴전의 결의, 하면 된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1963년 7월 하순, 폭우가 쏟아지는 야반. 그때 나는 서재의 일우(一隅)에 앉아 붓을 멈추고 멍하니 비에 젖어가는 밤의 가로를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저 거리로 뛰어나가 내 재주로 저 비를 막거나, 아니면 저 비 때문에 수없이 울고 있을 동포와 더불어 이 밤을 지새워 보고 싶은 격정(激情)을 느꼈다. 5천 년을 하루같이 시달려온 이 피곤한 민족이 모처럼 일어서려는 비장한 마당에 다시금 하늘은 시련을 내리다니…. 그러나 우리는 일어서야 하고 이 고비를 싸워 넘어서야 했다. 민족의 시련과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하늘은 시련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지난 한동안 인위적 재난과 자연의 재화를 혼자 도맡았다. 본인은 그 격랑 속에서 독주(獨舟)를 저어가는 사공일지언정 조금도 낙망하지 않고 실의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 파도의 물결이 모질면 모질수록 더욱더 강해져 가고 있고 또한 불퇴전의 결의에 불탄 것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경제 성장의 신화를 일궈낸 참모들도 박 대통령의 하면 된다 정신을 경제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희일 전 농수산부 장관의 회고. "지난 5천 년의 역사를 더듬을 것도 없이 40년 전만 해도 참담했던 우리 경제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수차례의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연히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아 보겠다는, 경제 개발에 대한 한 지도자의 불굴의 집념과 의지, 그리고 능력 있고 사명감 있는 젊은 관료집단, 창의적이며 의욕에 찬 기업가들, 손재간 좋고 근면하며 교육 수준 높은 근로자들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국민들의 집합된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국민을 일깨우고 결집시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면 된다를 넘어선 어떻게 하면 된다
최외출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박 대통령이 '하면 된다'는 저돌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비전, 전략, 용기, 인내 등 네 가지를 꼽은 것과 부합하는 얘기다. '하면 된다'는 용기와 함께 목표한 바를 이뤄낼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만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빈곤 탈출을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그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든 끝에 수출이 답이란 결론을 얻었다. 수출을 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다. 새마을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국토종합계획도 수립했다.
박 대통령은 '주식회사 대한민국 사장'을 자임했다. 1960년대 초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집행되고 있을 당시 대통령 집무실에는 100여 개가 넘는 민간공장 건설 진행 상황을 기록한 대형 패널을 회전기둥에 묶어 한 장씩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기업을 만들어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 집권 당시 수출 전략의 설계자로 알려진 당시 박충훈 상공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박 대통령을 '수출전선의 총사령관'으로 묘사한 바 있다. 수출을 많이 하자고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 방법들도 총동원됐다. 박정희정부는 1964년에 해외시장 개척을 전담하는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65년부터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매달 한 번씩 열었다. 인재 교육 없이 공업국가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 신규 노동력 즉 기술 교육으로 훈련된 노동력을 확보해 1960, 70년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도록 했다.
당시 경제 발전의 견인차 중 한 명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박 대통령만이 조선사업을 격려했다고 술회했다. "박 대통령께서는 '한 번 시작한 일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해야지 도중에 중단하는 기업가가 되어서는 국가에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오' 하면서 저에게 용기와 의지를 북돋워주셨습니다. 그 당시 현대조선은 모든 사람들이 부정하고 의아해했는데도 그분만이 가능성을 내다보시고 격려해 주시어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대 조선국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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