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 따라하기 아닌 '사랑' 입니다

입력 2014-01-25 07:02:32

"노래 열정만은 진짜" 다시 주목받는 모창의 세계

장면 하나. 12일 가수 나훈아의 이미테이션 가수인 '너훈아' 김갑순(57) 씨가 간암으로 2년간 투병한 끝에 결국 숨졌다. 김 씨의 별세소식에 많은 언론이 김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특집기사를 실었다. '슈퍼스타 나훈아의 닮은꼴'이라는 수식어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너훈아라도 어디냐"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너훈아' 김갑순 씨는 간암 투병 중에도 무대에 섰다. 2010년 가수 현철의 이미테이션 가수인 '현찰' 박현열 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부고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장면 둘. 지난해 12월 7일 JTBC '히든싱어 2' 9회에 출연한 '사랑해 휘성' 김진호(24) 씨의 4라운드 동영상 클립은 22일 현재 유튜브에서 조회 수 약 119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라는 휘성의 노래로 원조가수 휘성, '서울대 휘성' 박준영(25) 씨와 대결한 김 씨는 휘성의 애드리브까지 똑같이 따라해 큰 화제를 모았다. 김 씨는 "휘성이 없었다면 노래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휘성의 열혈 팬임을 드러냈다.

모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때 연예인들의 장기자랑 중 하나이거나 밤무대에서 출연료를 아끼려고 부르는 이미테이션 가수의 생계수단 정도로 여겨졌던 모창이 지금은 예능 콘텐츠의 한 부분, 또는 한 가수의 열혈 팬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부상했다.

◆세상의 외면을 받던 모창

'모창 가수'라고 하면 예전부터 '이미테이션 가수'라 불리며 원조 가수 출연료의 절반 이하의 출연료를 받고 밤무대나 지역축제 등에 출연하는 가수를 떠올리기 쉽다. 이들은 너훈아, 나운하, 주영필, 조형필, 태지나, 패튀김, 임희자 등 원조 가수의 이름 중 한 부분만 살짝 바꾼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도 '결국에는 가짜'라는 이유로 대중의 차가운 시선을 면치 못했다. 2007년 가수 박상민을 사칭해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선 혐의로 모창 가수 임모(40'예명 박성민) 씨가 검찰에 기소돼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사건 탓에 "연예인 닮은꼴 가수는 진짜 가수로 위장해 사기를 칠 수 있다"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남아버렸다. 이 사건 이후 이미테이션 가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또한 점점 멀어져 갔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 일부 지원자들에게 '모창하지 마라'는 지적도 모창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했다. 사실 '모창하지 마라'는 말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니만큼 심사위원들은 누구와 비슷하게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라는 의미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학 실용음악과나 실용음악학원의 보컬 강습에서는 강사들이 "기성가수와 닮게 부르지 마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학생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목소리의 개성을 드러내 보이는 데 집중하라는 뜻에서 하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모창하면 뭔가 노래를 잘못 배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누구와 닮은 목소리가 나거나 모창의 흔적이 보이는 지원자들은 여지없이 탈락의 쓴잔을 마셨기 때문이다.

◆모창, 왜 다시 주목받나?

모창의 재발견을 이끈 일등공신은 JTBC의 프로그램 '히든싱어'다. 19일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8일 오후 11시에 방송된 JTBC '히든싱어 2' 15회는 전국 유료매체 가입가구 기준 6.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대개 케이블TV 채널의 프로그램들이 1, 2%의 시청률만 기록해도 성공적이라고 보는데다 한때 JTBC와 같은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 이하인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히든싱어 2'는 메가톤급 흥행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가장 큰 원인은 원조 가수와 모창 능력자와의 대결이 주는 긴장감에 있다. 일반인들과 프로 가수가 대결하는 포맷과 원조 가수를 똑같이 따라하는 일반인들의 능력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대경대학교 유정우 교수(실용음악과)는 "일반인이 프로 가수를 상대로 대결하고 일반인들의 실력에 프로 가수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게 '히든싱어'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모창능력자들은 원조 가수의 팬이거나 원조 가수와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모창이 돈벌이 수단이 아닌 '존경의 표시 중 하나'로 인식하게 만들어 모창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진짜 가수를 찾게 한 포맷은 모창 가수들이 실제로는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히든싱어'를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로운 형식'이라고 분석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BAS 엔터테인먼트아카데미 윤주혁 원장은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내리막길을 걷는 상황에서 가수 지망생들이 출연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과, 좀 더 오락적이고 자극적인 걸 원하는 대중의 욕구도 같이 맞아떨어져 '히든싱어'가 인기를 끈 것"이라고 말했다.

'너훈아' 김갑순 씨가 별세하면서 그의 인생역정과 무대에 대한 열정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도 대중들이 모창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다. '김 씨가 간암 투병 중에도 끊임없이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비록 모창을 하지만 무대에 대한 열정만은 진짜였음을 대중이 알아본 셈이다. 가수 현철의 이미테이션 가수로 유명한 현칠(59) 씨는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를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짜만큼의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모창, 계속 인기 끌 수 있을까?

모창 관련 콘텐츠가 계속 인기를 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시선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대중들이 원조와 비슷한 느낌의 모창능력자들에 대해 잠깐동안은 열광할 수 있지만 결국 '오리지널'로 돌아오게 마련이라고 보고 있다. 영남대 이동순 교수(국어국문)는 "'너훈아' 김갑순 씨의 별세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데에는 길어지는 나훈아의 공백과 평생 '가짜 나훈아'로 산 김 씨의 인생에 대한 대중들의 연민 때문"이라며 "'히든싱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모창이라는 콘텐츠가 양지로 나온 건 맞지만 대중의 호기심이 사라지면 지금의 인기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주혁 원장도 "'히든싱어'에 출전할 만한 목소리에 특색있는 가수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며 "MBC의 '나는 가수다'가 굉장히 도발적인 기획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한 만큼 '히든싱어'도 비슷한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창을 위한 노력이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훈련의 과정으로 옮겨진다면 모창을 쉽게 깎아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히든싱어 2'에 출연한 신승훈도 과거 모창 가수 출신이었으며 지금도 창법연구를 위해 선배 가수들의 모창을 할 때가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유정우 교수는 "노래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그늘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훈련의 한 과정으로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며 "단, 모창이 자신의 독창성을 찾는 발판으로 기능 해야지 단지 노래로 유명해지려고 도구적 목적으로 모창을 사용한다면 모창은 기존 가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덫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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