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니? 같이 살쟈∼옹…싱글족 "고양이와 살아요∼"

입력 2014-01-25 07:21:14

평소엔 "너 왔냐∼" 시크, 한마디로 '밀당' 귀재

서나래 작가의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한다. 혼자 사는 작가와 동고동락하는 고양이 '웅이'와 '뚱이'는 웬만한 사람보다 웹툰에 더 자주 등장해 독자들이 각기 다른 고양이들의 성격까지 파악할 정도다. 혼자 사는 도시인은 자유롭다. 하지만 자유가 외로움까지 채워주지는 않는다. 최근 고양이를 키우는 '독거남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어떻게 고양이를 키우게 됐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고양이의 매력은 무엇일까? 고양이 집사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 "주인, 너 왔냐옹?", 시크한 고양이들

백화점 의류매장 매니저인 김효정 (32'여'대구 중구 삼덕동) 씨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이름값 하는 미묘 '미남이'와 '점례'는 보살펴야 할 애완동물이라기보다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다. 그는 원래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개를 키웠는데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요물이다' '주인을 무시한다' 이런 편견이 있었죠." 하지만 김 씨는 '외로워서' 함께 살게 된 고양이한테서 개와 반대되는 매력을 발견했다.

김 씨는 고양이가 "밀 땅(밀고 당기기)의 귀재"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주인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순종적인 애완동물이 아니다. 개가 언제나 꼬리 치고 주인을 반겨준다면 고양이는 "왔어?"하고 곁눈질로 쳐다본 뒤 자기 할 일을 한다. 사람들이 고양이 주인을 '집사'라고 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힘들 때 먼저 다가와 머리를 비비고, 위로하는 타이밍을 아는 동물이다. 김 씨는 "회사 일이 힘들어 펑펑 울면서 집에 들어갔더니 얘들(고양이)이 와서 애교를 부리더라. 평소에 안 오다가 내가 힘든 순간 먼저 찾아와 위로해줬는데 그 감동이 오래갔다"고 회상했다.

고양이는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밖에 있는 시간이 긴 직장인들에게 항상 챙겨줘야 하는 개보다 침대 밑, 이불 속, 집안 곳곳에 숨어 혼자 노는 고양이가 오히려 낫다. 또 고양이는 손이 덜 간다. 스스로 몸을 닦으며 청결을 유지하는 습성이 있어 자주 목욕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습성 덕분에 여러 마리를 키워도 큰 부담이 없다. 고양이 다섯 마리를 키우는 직장인 도귀은 (37'여'서구 비산동) 씨는 "조용히 각자 제 할 일을 하기 때문에 분뇨통이 더 빨리 차고, 사료 값이 많이 드는 것 외에 두 마리나 다섯 마리나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도 씨가 처음부터 고양이 대가족을 키웠던 것은 아니다. 이불 공장에 고양이가 방치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두 마리를 구조해 키운 것이 시작이었다. 암컷 한 마리가 발정 나서 집을 나갔고,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는데 새끼 두 마리를 임신한 상태였다. "노끈에 묶여 있는 길고양이를 구출해 키우면서 졸지에 다섯 마리 '냥이 엄마'가 된 거죠. 요즘엔 고양이 집에 얹혀사는 느낌이 들어요. 고양이 같은 남자 잘못 만나면 큰일 납니다. '밀 땅' 잘하고, 가끔 집 나가고, 독립적이니까. 하하."

◆ 유기묘 보듬는 착한 주인들

고양이 아빠 경력 5개월차인 직장인 김강수(25) 씨. 그는 '깡돌이'를 길에서 만났다. 집 앞 자동차 타이어 사이에 숨어 있던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 인연이 됐다. 마침 그날은 인터넷에서 고양이 사진을 보며 '애완동물 키우고 싶다'고 마음먹은 날. 김 씨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

그는 사실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자정을 넘겨야 퇴근하는 바쁜 직장생활, 20㎡(약 6평) 남짓한 좁은 원룸에 사는 지금 삶에는 개보다 고양이가 더 알맞다. 김 씨는 "집이 좁아도 캣 타워가 있으면 고양이가 수직 이동을 하며 놀 수 있다"며 "고양이도 외로움을 타지만 잠자는 시간이 많아 집을 비워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자정 넘어 퇴근해서 깡돌이 밥 주고, 분뇨 치우고, 30분 정도 쓰다듬어 주고 잠에 든다. 부담스럽지 않은 룸메이트"라고 덧붙였다.

고양이를 싫어했던 직장인 남재현(35) 씨가 '칠복이'를 키우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지금은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칠복이는 한때 유기묘였다. 누가 이사 가며 버리고 간 칠복이를 남 씨의 여자친구가 발견했고, "주인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시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남 씨가 '당분간' 맡기로 했다. 무서운 것은 '정'이었다. 과거 상처를 잊고 오래 살라고 토속적인 이름까지 지어주며 여태 함께 살고 있다.

칠복이는 사람에게 쉽게 정주지 않았다. 처음 3개월간 구석에 들어가서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계속 숨어 지내니까 '내가 계속 키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칠복이가 피부병까지 앓고 있어서 치료라도 제대로 한 뒤 남한테 주자고 생각하며 키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예전에 집에 손님이 오면 옷장 밑에 숨어 있었지만 요즘은 눈치를 살살 보고 밖으로 나와요. 키우는 재미를 봤다고 할까요."

사람을 경계했던 칠복이는 이제 남 씨가 집에 도착하면 기쁘게 반겨준다. 남 씨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문 앞에서 '냥냥'거리며 환영해준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무릎에 와서 안기기도 한다. 놀아달라는 것인지, 비키라는 것인지 아직 헷갈리지만 그래도 칠복이를 키우며 기쁨을 느끼는 중"이라고 말했다.

◆ 길고양이 밥 주는 '캣맘'

고양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길고양이들에게 꾸준히 밥을 주는 '캣맘'도 많다. 직장인 박정민(30'여) 씨는 단독 주택에 살았던 지난 3년간 '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했다.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가득 채워두면 길냥이들은 소리없이 밥그릇을 비우고 갔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밥 먹고 있던 길고양이 무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이렇게 박 씨 집을 거쳐 간 고양이만 10마리가 넘는다. 박 씨는 "평균 수명이 10년인 고양이를 책임감 없이 나 좋다고 키울 수 없어 길고양이들에게 밥 주는 편을 택했다. 길고양이들은 3년간 밥을 줘도 만지려고 하면 도망가더라"고 웃었다.

대구에는 길고양이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캣맘들이 산다. '대구 TNR'(Trap-Neuter-Return)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후원하는 모임이다. 번식력이 강한 길고양이들은 안락사시키는 대신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 방사해 그 영역을 지키고 살아가게 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이 시작됐다.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길고양이는 방사할 때 귀 끝을 잘라 표시한다. 한때 TNR 회원으로 활동했었던 경봉주(37'여'동구 검사동) 씨는 "처음에는 회원들이 자비를 털었지만 지금은 고양이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천연 화장품 등을 판매한 뒤 수술비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 14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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