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 무서워 집에서 구조 애간장…

입력 2014-01-22 11:05:36

60대 할머니, 5층 계단 내려와 탈출…'화재-진화' 긴박했던 20분

신생아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수성구 15층짜리 아파트 화재는 주민들에게 공포였다.

불이 1층에서 발생, 그 연기가 복도와 베란다를 타고 위로 올라가 위층 주민들은 대피에 애를 먹었다. 더욱이 불이 난 시간이 직장인들의 퇴근시간과 맞물린데다, 저녁 식사시간 때여서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복도를 가득 메운 연기를 피해 탈출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다. 집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주민들 역시, 화염이 언제 덮칠지 몰라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5층에서 정모(7) 양을 돌보던 가사도우미 A(67'여) 씨는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 복도를 정 양을 안고 기어 내려오다시피 해 화를 면했다. 그는 "1층에서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니 이미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놀라 아이를 안고 현관문을 나왔으나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연기를 피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어둡고 눈이 따가워 잠금장치(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를 수가 없어 아이를 꼭 끌어안고 기어서 한 층 한 층 내려왔다. 겨우 1층에 다다랐을 때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A씨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정 양과 함께 병원으로 옮겨졌다.

2층 주민 홍모(76'여) 씨는 "종이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나 우리 집에 불이 났나 싶어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봤다"며 "그때 시끄럽게 화재경보기가 울려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검은 연기가 복도를 뒤덮어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집안에서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외출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화재의 규모를 묻고 대응 방법을 찾기도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집 안에 함께 있다가 불이 난 것을 안 정모(19) 군은 외출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바깥 사정을 물은 뒤 침착하게 대응했다. 정 군은 "어머니가 물을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방문을 다 열어둔 채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라고 했다"며 "소방관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해 그제야 집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집 밖에서 불이 번지는 것을 본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구조에 나서기도 했다. 이모(52) 씨는 "소화기를 들고 와 불이 난 집 뒤편 베란다 창문을 깨고 구조를 시도했으나 불길이 너무 세 차마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집 안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옷에는 온통 그을음이 묻어 있고, 신발조차 신을 겨를이 없었던 발은 시커먼 재들로 얼룩져 있었다.

서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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