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할퀸 모국서 희망의 복구 봉사 '구슬땀'
17일 오후 필리핀 메들린시에 있는 한 농촌마을. 이곳은 지난해 11월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간 이후 제대로 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인근 타클로반 지역에 구호활동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서너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움막 같은 집에서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한 가족을 찾은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베노자 멀시(43'청송군) 씨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TV로만 봤던 모국의 태풍 피해 참상을 직접 보고 절실히 느꼈어요. 그리고 고향에 있는 가족 생각이 많이 났어요." 멀시 씨를 포함해 경북지역 15개 시'군에서 온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15명은 쌀과 의류, 약품 등 구호물품 꾸러미 수백 개를 마을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손을 붙잡고 모국어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
15일부터 1주일간 필리핀 출신 경북지역 결혼이주여성 15명이 중심이 된 봉사단 46명이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찾아 희망을 전하고 있다. 현재 경북지역 결혼이주여성의 10%인 980여 명이 필리핀 출신이다.
이번 구호활동이 기존과 다른 점은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이 모국어와 모국 문화 및 풍습에 익숙한 점을 활용해 구호활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포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활동했던 결혼이주여성 루빌린피 알마리오(32'포항시) 씨는 태풍으로 교실이 무너져 지붕 보수를 해주러 간 메들린과학초등학교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봉사단 소속 대학생들이 이곳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유머를 섞어가며 유창한 통역으로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루빌린피 씨는 "한국에 시집와 살면서 내가 모국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앞으로 대학에 가서 전문 통역사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장흔성 경상북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지금껏 결혼이주여성들은 보호 및 지원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구호활동을 통해 이들과 그 자녀 세대가 앞으로 자립하여 다양한 국제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구호활동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주연이었다면 조연은 새마을봉사단 소속 지도자 및 대학생들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지도사들이었다. 이들은 결혼이주여성들과 동행하며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였다고 했다. 박두분(64'여) 경주시 새마을부녀회장은 "필리핀 학생들을 위해 300인분 식사를 준비하면서 필리핀 음식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앞으로 국내에서 다문화 관련 행사가 있을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며 웃었다.
모국을 찾은 결혼이주여성들의 구호활동 소식은 현지에서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국영 PTV, ABS-CBN 등 주요 방송사와 교민신문인 세부코리아뉴스 등이 찾아와 결혼이주여성들과 경북도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 취재했다. 박의식 경북도 보건복지국장은 "앞으로 필리핀을 비롯한 결혼이주여성들의 출신 국가들을 찾아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치고, 결혼이주여성 및 자녀들을 다문화 인재로 양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메들린에서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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