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장편 역사소설 '운현궁의 봄'은 왕권의 부활을 노리는 몰락한 왕손 이하응의 한과 꿈을 그렸다. 안동 김씨 세도 아래 온갖 수모와 천대를 감내하며 파락호 행세까지 하다가 기어이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야인에서 대원군으로 등극하며 권력을 잡은 그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과감한 개혁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친정(親政)을 바라는 아들 고종과 며느리인 명성황후의 배후 조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을 때가 50대 중반.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으로 치면 일흔에 가까운 연령일 듯싶다.
이때부터 죽는 날까지 대원군은 노욕의 세월을 보냈다. 절대반지에 홀린 호빗처럼 권력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정계 복귀를 꾀하다가, 기득권 세력과 맞서던 초창기 개혁가의 긍정적 이미지마저 다 잃고 말았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대통령의 친형으로 한 시절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영일대군'이란 세간의 비아냥을 무릅쓰고 18대 국회에 진출하는 노욕만 부리지 않았어도 칠십대 후반의 나이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망신살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칠십이 넘은 나이에 여섯 번째 금배지를 달고 입법부의 수장에 오른 노련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 또한 한나라당 대표를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정치 인생을 마무리했더라면, 과거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불거져 낙마하는 치욕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도 일흔이 넘어 대권 3수에 나서는 노욕을 보이면서 우리 정치사에 오점만 남기고, '대쪽'이라는 과거의 이미지에 상처만 덧냈다. 노욕에 눈이 멀면 말년이 추해지기 마련이다. 군자삼계(君子三戒)라는 말이 있다. 청년기에는 여색, 장년기에는 완력. 노년기에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차기 지방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그동안 펼쳐놓은 사업들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시장의 이번 행보는 산뜻하다. 자칫 3선에 도전했다가 그동안 이루어 놓은 공(功)까지 다 까먹고 불명예 퇴진을 해야 한다면 그 무슨 낭패인가.
조향래 논설위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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