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권 국가 독점체제…지배층 유리한 책 보급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강명관 지음/천년의 상상 펴냄
'우리 사회에서 다산 정약용의 사유는 높이 평가되지만, 그의 저술이 인쇄되었는가 아니면 필사본으로 존재하는가, 만일 인쇄되었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 얼마나 찍혔는가 하는 질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서설 중에서-
이 책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책과 사회가 맺는 여러 조건 혹은 상황을 통해 조선시대사를 읽어내려는 시도다. 신체와 정신을 분리할 수 없듯이 책 역시 내용과 물질적인 형태로 책을 분리할 수 없다는 데 바탕을 두고,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건들, 즉 책의 제작, 탄생, 유통, 집적(도서관), 소비자 등을 살펴봄으로써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금속활자를 보자.
금속활자라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세계 최초' '구텐베르크보다 몇 년 빨리'란 말을 생각한다. 이 말 속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점과 함께 '~보다 몇 년 빨리'라고 덧붙임으로써 우월의식이 내포돼 있다.
지은이 강명관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서구사회는 새롭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금속활자를 만든 고려와 그 활자를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한 조선을 구텐베르크의 시대와 등치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금속활자의 궁극적 의미가 활자의 재질이 금속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영향력에 있다고 한다면, 양자는 결코 동일한 결과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조선의 금속활자는 독서인구 증가, 지식의 해방, 지식의 값싼 공급과 상관성이 없고 따라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고려의 금속활자는 그 재료가 금속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각자 다른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책이 귀했고, 또 그만큼 비쌌다.
영조 때 인쇄한 것으로 현재 영인본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대학'과 '중용'은 각각 178쪽, 294쪽이었다. 당시 이 책의 가격은 면포 3, 4필에 해당했다. 면포와 똑같지는 않지만 요즘 안동포 1필은 60만~7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영인본 책 한 권을 안동포 3, 4필 정도와 교환했다면 그 값을 짐작하고 남는다. 요즘 시판되고 있는 '대학'과 '중용' 합본은 번역문과 원문을 합쳐 246쪽짜리 책이 7천500원이다.
가격을 통해 짐작건대 조선시대에 책은 아주 부유한 계층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계층이 책을 읽을까? 적어도 비용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대 한국에도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은이 강명관 교수(부산대)가 책을 통해 조선시대를 읽었듯이 독자들은 책을 통해 한국사회를 읽어볼 수 있겠다.
조선시대 책을 인쇄하는 주체는 국가였다. 국가가 '출판권'을 소유했다는 것은 국가가 지식의 공급처이자 유통주체라는 의미다. 어떤 책을 얼마나 찍어낼지 결정하는 사람은 국왕과 고위 관료들이었다. 결국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체제에 유리한 책만 찍어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책은 서적문화를 통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는지, 조선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또 조선사회(전쟁, 사신교환, 유통)는 책 출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하나씩 살펴본다. 547쪽, 2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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