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서 식탁까지 '최단' 거리, 농민·소비자는 '최대' 만족
'로컬푸드'란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을 뜻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급증하면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고민이 나타났고, 여기에 농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의식이 더해져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됐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
농촌에서 식탁까지 거리를 최대한 줄여 먹을거리의 안전성과 신선함을 확보한다. 유통 비용이 적게 드니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구입하고, 안정된 수급으로 농민들은 지속가능한 농업의 희망을 본다. 그렇게 도시와 농촌은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간다.
외국산 농산물이 마구 쏟아지는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 시대의 한 가지 해답은 지역 소비자가 지역 농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로컬푸드다.
◆경북 1호 서청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이달 7일 오후 청도군 이서면 양원리에 있는 서청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서이만(68'청도군 이서면 흥선리) 할머니가 고들빼기, 무청시래기, 밤호박 등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진열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곳 직매장이 문을 연 이후 거의 매일 10여 가지가 넘는 농산물을 출하하고 있다. 이전에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내다팔던 때와 다른 점은 생산부터 운송, 선별, 포장, 가격 결정, 재고 관리까지 모두 서 할머니가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 할머니는 "판로 고민을 덜어서 참 좋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품목을 파악하고, 품질도 높이고, 열심히 밭일하는 것은 농민들이 관심과 의지만 가지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판로 확보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직매장에 청도반시 등 감 제품을 진열하고 있던 박정규(45'청도군 이서면 칠곡리) 씨도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청도에는 곶감 경매장이 없다. 그렇다고 경매장이 있는 상주까지 가려면 경비가 많이 들어 나 같은 소규모 농가는 도매업자에게 바로 넘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하지만 직매장이 생겨 판로 고민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셀프 농산물 장터
서청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전국에서는 열 번째, 경북에서는 1호로 문을 연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현재 이서면 지역 120여 회원농가에서 생산하는 무, 배추 등 채소류와 청도 특산품인 청도반시, 헛개나무와 대추 등 특산가공품 등 90여 개 품목을 당일 생산 및 출하를 조건으로 판매하고 있다. 문을 연 지 두 달여 만에 하루 평균 매출 200만원대를 기록하며 회원 농가에 쏠쏠한 소득을 올려주고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의 특징은 유통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당일 생산 및 출하로 신선도도 보장된다는 점이다. 회원 농가는 수수료로 수입의 10%만 내면 된다. 대신 농협은 매장 관리와 홍보는 물론 회원 농가를 대상으로 품목 선정, 포장, 가격 결정 등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신선하고 저렴한 농산물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에 더해 소비자를 끌기 위해 고려해야할 요소는 입지다. 곽태용 서청도농협 조합장은 "승용차로 20~30분 거리인 대구 수성구가 주요 배후 소비지다. 또 주변에 청도소싸움장과 청도박물관 등이 있어 오가는 행락객도 주요 소비자다"고 말했다.
이곳의 선전에 힘입어 농협 경북지역본부는 오는 2월 경산시 자인면, 4월 칠곡군 북삼읍에 잇따라 로컬푸드 직매장 문을 연다. 정부는 2016년까지 전국에 직매장 100곳을 설치할 계획이다.
◆전국적인 로컬푸드 명소, 전북 완주군
이달 7일 오후 전북 완주군 용진면에 있는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손님 30여 명이 카트를 밀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트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2012년 4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연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현재 500여 회원 농가에서 생산하는 농산물과 가공식품, 화훼류, 목공제품 등 400여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월 매출은 평균 10억원대를 넘어섰고, 회원 농가들은 이전과 비교해 10~200% 소득이 증가한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
소비자들은 신선하고 저렴한 것은 물론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 뺨칠 만큼 품목이 다양하고,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품목들이 있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주부 김선화(35'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씨는 "직매장이 문을 연 이후 점점 품목이 늘어나 다양한 농산물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게 됐다"며 "아이들 아토피 예방을 위해 우리 밀과 쌀로 만든 빵과 과자를 사러 정기적으로 찾는다"고 말했다. 이곳도 가까이에 배후 소비지가 있다.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전주시다. 특히 2㎞ 거리인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송천동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있다.
◆작은 농민들을 위한 농산물 판로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성공 이후 완주군은 전국적인 로컬푸드 명소로 떠올랐다. 2012년 6월 완주지역 10개 농협과 완주군이 공동출자한 농업회사법인 ㈜완주로컬푸드가 설립됐고, 같은 해 10월 전주의 중심지인 완산구 효자동에 직매장 2호점이, 지난해 7월 전주의 관광명소인 모악산에 직매장 3호점과 농가 레스토랑, 농산물 가공센터 등을 갖춘 '모악산 로컬푸드 해피스테이션'이 문을 열었다.
완주군은 내년까지 직매장 2곳을 추가로 설치하고, 지역 3천여 농가를 참여시킬 계획이다. 목표 매출은 500억원대. 완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인근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수급되는 탄탄한 로컬푸드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렇듯 로컬푸드 직거래는 중소농과 고령농, 여성농, 귀농인들이 생산하는 소량 다품목 농산물의 안정된 판로로 주목받고 있다. 규모화'전문화 농업 정책만으로는 끌어안기 힘든 농업인들을 위한 대안인 것.
경북 농촌에는 더욱 절실하다. 현재 경북지역 전체 농가의 52%가 고령농가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전체 농업인의 16%가 여성으로 역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귀농인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2012년 3천596명이 경북으로 귀농했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러시와 맞물려 점점 늘고 있다.
글'사진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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