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장편 다큐 영화 '풍경' 찍은 장률 감독

입력 2014-01-17 07:33:33

낯선 땅 한국…이주노동자들의 슬픔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나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풍경'은 재중동포 장률(張律)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풍경'은 중국과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 9개국에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14명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일상과 노동현장의 풍경을 '지루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꾼 가장 기억나는 꿈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들이 들려준 꿈은 그들이 떠나온 고향이기도 하고, 이주해 온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의 '풍경'과 뒤섞인다. 그러나 카메라는 쉽사리 그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한다.

"보통 다큐멘터리는 막 들어간다. 다큐를 하게 되면 생생하게 들어가서 찍으려는 욕심이 난다. 실제로 이번에도 '풍경'을 찍다가 그런 욕심이 났지만, 그것을 참는 것이 힘들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의 허락을 받고 찍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다며 '못하겠다. 당신들 우리한테 더 이상 오지 마라'고 하면 찍지 않았다. 그 사람의 삶이 우리 다큐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큐라는 것은 사람과 직접 부닥친다. 한 번이라도 (이주노동자) 그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봤는가. 그래서인지 다큐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두려움이 많았다."

장 감독은 영화 '세계'의 지아장커(賈樟柯) 감독 등 중국의 6세대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거장으로 꼽힌다. 이미 '당시'(唐詩, 2004)와 '경계' '중경' '이리'(2007), '두만강'(2008) 등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작업을 해왔다. 2년 전부터 연세대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아예 한국에 거주하면서 내놓게 된 첫 다큐멘터리 영화가 '풍경'이다.

-어떻게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된 것인가.

"다큐에 관심이 있었지만 찍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전주영화제에 '3인3색'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3개국 감독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각 찍어서 상영하는 것인데 일본과 인도네시아 감독, 그리고 중국 감독인 나를 포함해 3명에게 '이방인'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제의했다. 다른 감독은 극영화를 찍었는데 나는 다큐도 그 주제면 괜찮다고 해서 받아들였다.

1995년 한국에 처음 왔는데 그때는 거리에 보이는 외국인들은 다 관광객뿐이었다. 2000년 이후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주 한국을 다녔는데 관광객 아닌 외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안산 등에 가면 외국인이 더 많았다. 그것이 10여 년 지나고서도 여전히 풍경처럼 보였는데 아직 낯설다. 분명히 오래된 풍경인데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더라.

낯설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톡톡 도드라진 것이고, 그 사람들 얼굴을 보면 활짝 핀 얼굴은 드물고 힘들어 보였다. 4월에 영화제를 하는데 한 달여 시간을 줬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간이 있었더라도 이렇게 찍었을 것이다."

-풍경에서는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나 꿈이 아니라 소박하게 한국에서 꾼 '꿈'을 물었다.

"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두고 고민했다. 그 사람들 속으로 불쑥 들어가도 되지만, 그러면 힘들게 일하는 상대방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사람과 사람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지 않으면 오히려 상처를 주고 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왜곡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그 지역에 살지만 실제로는 한국 사람과 섞이지 않고 있다. 한국 사장이 있고, 한국 동료가 있고, 그들이 사는 셋집 주인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섞여 살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속 세계를 알고 싶은데 어느 정도 알아내면서도 그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질문에도 질문을 하는 사람은 강자다.

꿈은 현실과 연결돼 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어떤 꿈을 꾸는지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꿈을 물어보니까 그 사람들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이 편안해하더라.

우리가 소통하는데 어느 부분을 찾아내는지 거기서 서로의 감정이 흐르면 무엇이 되지 않을까. 그것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조금 더 깊게 알았다. '풍경'을 통해 그들과의 소통에 한 발 내디딘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노동의 신성함 같은 주제가 강조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제가 '첫걸음'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 노동하는 모습을 한국 관객들이 처음 봤다고들 할 정도로 생소하다고 한다. 상추까지 그들이 수확하는 것을 본 것은 충격이었다고도 했다.

그들이 일하는 과정을 인내심 있게 보면 거기에서 우리의 감정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들이 노동하는 장면을 한참을 비춰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지루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하는 것이 더 지루한데, '우리는 그것을 참고 몇 분이라도 봐줄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모습에서 노동의 리듬을 확인하고는 감동을 받았다. 노동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잊어버린 것 같다. 노동의 결과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돈을 벌러 왔다고만 생각한다.

그들이 일하는 순간만큼은 그 공간의 주인은 그들이다. 그것을 봐달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평등'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

딱 한군데 마장동 도축장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예술에 가까운 노동이 더 아름다웠다. 천 염색공장이 그랬고, 거기서 꾼 꿈도 그랬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노동자가 꾼 꿈도 자기가 만든 천을 자기 고향에서 아내가 두르는 꿈이었다. 그 사람은 정말 일을 잘했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했다.

"실제로 계속 관찰자로 있기로 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내 감정이 들어가서 참지 못한 것이다. 관찰을 한다고 했는데 실제 나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영화) 편집으로 말하면 마지막 장면은 빼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을 빼버리면 훨씬 깔끔하다. 그런데 다큐 영화는 극영화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감정이 많이 움직였다면 그것도 영화가 깔끔해지고 못하고와 관계없이 (이주노동자)그 사람들과 느낀 것-그 사람들도 조용하게 있지만 실제로는 뛰고 있다는 것-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큐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제대로 된 다큐도 많이 있지만 '풍경'과 같은, 좀 다른 다큐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껏 조선족 등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 등 약자들을 다뤘다. 6세대 감독이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닌가.

"그 세대에 대해서는 어느 감독이나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이 말하는 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거의 다 베이징영화학원(電影學院) 출신이다. 5세대는 물론 6세대까지 그 학교 출신 외에는 영화를 하지 못했다. 5세대까지는 신화와 역사에 빠졌지만 6세대는 현실에 부닥친 문제들을 작품화하고 있는데 나는 그 안에 속하지 못했다. 그쪽(베이징영화학원) 출신이 아닌데다 전혀 그들과 친분도 없고. 혼자서 영화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영화제 같은 데서 그들과 만나긴 한다. 나는 여전히 꿈(?)같은 영화를 찍고 있다."(웃음)

-'풍경'에는 음악을 쓰지 않았다. 왜 그런가.

"내가 만든 모든 영화는 음악을 쓰지 않는다. 음악 잘하는 사람은 음악을 쓰고, 나처럼 음악 못하는 사람은 (음악)쓰지 않고,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사실 나는 현장의 소리를 좋아한다. 그것을 음악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너무 싫다. 음악이 내 영화에 들어가면 영화를 방해한다. 실제 현장의 소리가 그림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래서 촬영현장에 가면 나는 소피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취향의 문제다.

영화를 보다가 한 10분 정도 나갔다 와도 이해되는 영화는 싫다. 계속해서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취향이라서 그런 관객과는 멀어지는 것 같다. 영화는 관객과 연애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서로 고민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장 감독의 영화는 '중국 영화'인가 '한국 영화'인가.

"그냥 '영화'로 봐주면 된다. 실제로 많은 문제가 구분을 하면서 생긴다. 가끔 다른 곳에 가도 '중국 감독인가, 한국 감독인가'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주세요'라고 한다. 영화를 왜 하겠는가. 영화라는 예술은 국가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영화를 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중적인 한국사회에 대해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시간이 많이 걸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고,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아서 그렇다. 어떤 거리에서 시작해야 하고 조금씩 들어가야 하는줄 모르고 정을 주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욕부터 먼저 나가고…. 좀 더 시간을 두고 그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풍경을 좀 더 세심하게 보고, 무시하지 않으면 차차 좋아지지 않겠는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중국도 다민족 국가지만 극복할 문제가 많이 있다. 중국이 닮아야 할 모델은 아니다."

장 감독의 고향은 중국 연길의 둔화(敦化)다. 그 역시 이곳에서는 이방인이자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국에서 꾸는 꿈은 무엇인지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피곤하면 꿈을 많이 꾼다. 한국에 1년 반 정도 있으면서 꾸는 꿈에서는 공간이 마구 섞인다. 처음에는 고향이 나왔다가 다음에는 베이징이 나오고 서울 거리가 막 뒤섞여 나온다. 사는 곳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도 '이 것이 무언가' 하고 아련해질 때가 많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