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식도암 환자 백형기 씨

입력 2014-01-15 07:05:13

"정신분열증 앓는 딸이 더 걱정이지요"

백형기(가명) 씨는 오늘도 약을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백 씨를 괴롭히는 식도암의 고통도, 백 씨의 딸을 괴롭히는 정신질환의 고통도 이 약 한 알로 사라졌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현실이 백 씨는 너무 괴롭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백형기(가명) 씨는 오늘도 약을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백 씨를 괴롭히는 식도암의 고통도, 백 씨의 딸을 괴롭히는 정신질환의 고통도 이 약 한 알로 사라졌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현실이 백 씨는 너무 괴롭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죽을 먹으면서 새로 만들어진 식도가 음식을 넘길 수 있도록 길들이고 있습니다.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몸무게는 자꾸 줄고 힘은 없어집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백형기(가명'69) 씨는 약통 옆에 있는 요구르트와 두유를 가리키며 "이게 식사의 전부"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식도암 수술을 받은 뒤 죽조차 넘기기 어려워진 백 씨는 "부족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다"면서 "점점 영양이 부족해지고 힘은 없어져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고 말했다.

◆불행의 시작

백 씨는 원래 건설현장에서 미장 일을 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미장을 배웠다. 실력도 좋아 나중에는 미장 기술자를 여럿 데리고 다니면서 일감을 받았다. 대구경북지역 건설경기가 좋을 때 번 돈으로 20년 전 지금 사는 집을 마련했다. 열심히 살면 '불행'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이란 단어는 결국 백 씨의 집안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백 씨의 딸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딸이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욕을 하는 것 같다"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딸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은 채 집안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집의 문이나 살림살이를 마구 집어던지거나 부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백 씨 가족이 사는 빌라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낯선 사람만 보면 극도의 두려움을 보이며 때리기 시작했다.

"딸에게 물어봐도 답을 하지 않았어요. 가슴만 답답했죠. 주변에서는 '신병에 걸려 무당이 되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도 가 보고 굿도 해 봤지만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는 건 없더군요. 절망적이었습니다."

백 씨는 미장 일로 번 돈을 딸의 병을 고치는 데 다 써버렸다. 사채도 쓰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백 씨의 딸은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4년 전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백 씨에게 남은 건 4천만원이 넘는 빚뿐이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아

백 씨도 자신의 딸을 치료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건강이 나빠지고 말았다. 특히 지난해 백 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백 씨의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3년 전부터 백 씨는 속쓰림이 심해졌다. 가슴과 명치 주변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 백 씨는 위염과 식도염이 있으니 치료받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 씨는 '속 쓰린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동네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급기야 밥 한 숟갈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백 씨는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받았다. "한 번도 내시경 검사를 받아본 적 없다"는 백 씨의 말에 동네 병원 의사는 "종합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백 씨는 큰맘 먹고 대구시내의 한 종합병원에서 내시경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보호자를 불러오라'고 말하더군요. '보호자가 없다'고 하니 의사가 우물쭈물 말을 못했습니다. 의사 앞에 있는 모니터를 힐끔 쳐다보니 제 식도를 찍은 사진이 있더군요. 색깔이 빨갛게 나오기에 '혹시 암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의사가 체념한 얼굴로 모두 이야기하더군요."

병원에서는 백 씨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백 씨는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더는 지긋지긋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딸의 병 치료로 빚에 시달리고 아내마저 백 씨 곁을 떠나 더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노모와 아직도 병에 시달리는 딸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백 씨는 지난해 11월 식도암 수술을 받았다.

◆"빚쟁이들이 찾아오면 어쩌죠?"

백 씨는 "빚쟁이들이 찾아올까 제일 두렵다"고 말했다. 딸의 병 치료로 여기저기 돈을 끌어쓴 데다 사채까지 건드리는 바람에 백 씨의 빚은 4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백 씨의 빚은 백 씨와 그의 동생이 한 달에 20만~30만원씩 갚아나가고 있다. 하지만 늘 동생에게 손을 벌릴 수 없는 처지라 항상 동생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부채만큼 무서운 것이 밀려 있는 병원비다. 식도암 수술 당시 보건소로부터 긴급의료지원금 100만원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기 때문에 병원으로부터 치료비 감면 혜택을 어느 정도 받았다. 남은 병원비가 280만원이었고 백 씨는 이를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했다. 수술 뒤 퇴원하고 나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비도 신용카드로 해결했다. 문제는 돌아오는 카드대금을 낼 돈이 없다는 것이다. 백 씨가 한 달에 받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보조금은 약 100만원. 이 중 전기'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과 대출 이자를 갚고 나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30만~40만원뿐이다. 이 돈으로 백 씨는 세 식구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내야 한다.

백 씨는 "너무 빠듯해서 동생에게 손 벌릴까 싶다가도 이자 갚아주는 것도 미안해서 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을 팔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 집마저 처분해 버리면 정말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어 손도 못 대고 있다.

백 씨는 집을 둘러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젊었던 시절 미장일과 건축 일용직으로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한 집이었다. 하지만 딸의 병을 고치려고 집까지 담보로 잡혀가며 여기저기 끌어다 쓴 돈 때문에 백 씨가 사는 집은 내 집이어도 내 집이 아니게 됐다.

"지금이라도 이 집을 담보로 잡은 사람이 '당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잘못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지금 앉은 이 자리가 바늘방석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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