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작업실] 조각가 김효선

입력 2014-01-14 07:58:36

작업대와 갖가지 연장들…아이들 놀이터같은 공간

작업대를 Y자형으로 만든 것은 조각할 대상을 움직이지 않도록 작업대 안에 가두기 위해서다. Y자 작업대 위에는 작은 작품을 제작할 때 쓰는 또 하나의 소형 작업대가 있고 거기에도 조각대상을 움직이지 않게 묶어두는 받침이 있다.
작업대를 Y자형으로 만든 것은 조각할 대상을 움직이지 않도록 작업대 안에 가두기 위해서다. Y자 작업대 위에는 작은 작품을 제작할 때 쓰는 또 하나의 소형 작업대가 있고 거기에도 조각대상을 움직이지 않게 묶어두는 받침이 있다.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은 뚝딱뚝딱 만들기 좋아하는 사내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가 될 성싶다. 벽면에는 다양한 길이와 너비로 켜놓은 널빤지가 서 있고, 작업대 위에는 한창 제작 중인 작품이 놓여 있다. 작업대 옆에는 다양한 크기의 톱과 끌, 망치, 송곳, 드릴, 자, 가위, 조각칼이 있고, 작업실 한쪽에서는 갈탄난로가 이글거리고 있다. 그리고 작업실의 나머지 공간은 국악과 느린 팝송이 채운다. 김효선은 느린 템포의 팝송과 국악을 듣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김효선이 이 작업실에 입주한 것은 1998년이다. 흙으로 작업을 하던 시절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했지만 나무를 재료로 쓰면서 이곳으로 왔다. 소음이 발생하는 나무 작업을 아파트에서 할 수는 없었다.

이 작업실로 온 뒤로 흙 작업에서 차츰 멀어졌다. 형상을 만들어 가마에 의뢰해 굽고 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예술이 늘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따를 수는 없지만,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효선은 나무로 작업한다. 조각의 재료로 흙, 금속, FRP, 나무 등이 있다. 김효선은 나무를 택한 이유를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싫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좋다고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거기에 맞는 나무를 구해옵니다. 그러나 나무가 있다고 바로 작업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에 세워두고 찬찬히 나무를 들여다보고, 친해지고, 나무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같은 이름의 나무, 같은 크기의 나무라고 해도 자란 곳에 따라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효선은 작품을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알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에 나무를 맞추기보다는 나무에 자신의 작업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과 나무가 갖고 있는 성질이 서로 잘 맞을 때 작품은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금속이나 흙, FRP는 오직 나의 손길만이 생명이지만, 나무는 나와 나무가 협동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고 할까요."

김효선은 대학(경북대 조소과) 시절부터 나무를 상대로 작업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이상하게 나무가 깎이지 않더군요. 나무와 내가 각자 따로 논다고 할까요. 아이를 키우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나무를 깎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마도 아이와 세월을 통해 생명이 깃든 나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김효선이 나무를 깎아 만든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연탄재, 망치, 가위, 화분, 사람, 나무….

그녀는 사람이 쓰거나 보는 사물을 통해 사람과 사람살이를 본다고 했다.

"예전에는 인체 조각을 많이 했어요. 인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조각하면서 사람과 사람살이를 표현하려고 했지요. 이제는 사람이 쓰거나 기대는 물건을 보면서 사람을 봅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가위'가 있다. 가위가 가위로 기능하자면 두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하다. 날카로움이 배제된 가위는 가위가 아니다. 그러나 날카로움이 상대에게 상처를 낸다면 그 역시 가위가 아니다. 가위는 날카로운 두 개의 칼날을 갖고 있지만 두 칼날이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낸다. 가위의 기능이 그렇지 않은가? 가위를 주제로 만든 '커플'과 '유능한 커플' 등은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을 은유한다.

연탄재를 주제로 만든 작품 '불꽃화석' 역시 같은 이치다. 연탄재는 자신을 희생해서 세상에 온기를 퍼뜨린다. 그렇게 연탄재는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탄재는 소멸하지 않는다. 애초에 연탄재가 갖고 있는 온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온기였으며, 세상으로부터 받은 온기를 세상으로 돌려줄 뿐이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 사람살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파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망치에 그녀가 붙인 제목은 '섬세한 손'이다. 망치는 대상을 부수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기 위한 섬세한 손길이라는 것이다. 어지러운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 역시 그렇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공간에서 김효선은 자르고 깎아 정돈된 생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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