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민간 주도로 日교토에서 한복패션쇼…디자이너 백현주 씨

입력 2014-01-11 08:00:00

궁중의상·부채춤에 흠뻑 빠진 일본인들…행사 매년 개최 제의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국 정상'배우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분야의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전통 선물로는 한복 인형을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그만큼 한복은 우리 복식(服飾) 문화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은 물론 잇따른 외국 순방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 지구촌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한복 외교'의 화려한 성공과 달리 정작 국내에서는 한복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내 전체 패션시장에서 한복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단 2%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백현주(56) 씨를 만나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토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

지난해 11월 24일 일본 교토에서는 눈길을 끄는 행사가 하나 열렸다. 대구의 백현주한복연구소와 재일 한인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교토지방본부가 양국 우호증진을 위해 마련한 '2013 한'일 친선 문화교류 페스티벌'이다. 도로를 차단한 채 헤이안신궁(平安神宮) 앞에서 한국의 궁중의상을 선두로 부채춤, 일본 기모노 무용단의 퍼레이드가 펼쳐지자 현지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 복합전시관인 '미야코 메세'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는 한국의 승무와 궁중복, 현대 한복을 선보일 때마다 1천여 석을 가득 메운 객석이 감동과 열기로 가득 찼다.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한복을 입고 오신 동포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우시는 모습에 저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지난해 7월부터 매달 평균 두 차례 이상 일본을 오가며 행사를 준비하는 바람에 겹겹이 쌓였던 피곤은 눈 녹듯 사라졌지요. 미스코리아들이 기모노를 입은 일본 모델과 함께 거리를 누빌 때에는 우리 고유 의상의 아름다움을 증명했다는 기쁨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습니다."

이 행사는 특히 한국과 일본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순수 민간 차원의 교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일본의 우경화에 따라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민간단체 간의 소통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해답이 보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40여 명의 한국 문화사절단 방문 경비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백 소장 등 민간에서 부담했다.

"알고 지내던 재일교포에게 제가 만든 궁중복을 선물한 게 문화교류 행사로까지 확대됐습니다. 그 교민이 교토에서 열린 한국 전통혼례에 제 옷을 입고 참석한 모습을 보고 일본 기모노협회 관계자가 양국 전통의상 패션쇼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던 거죠. 11월이 교토의 단풍 관광이 절정이라 숙소를 구하지 못해 인근 오사카에 묵어야 했던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네요."

보람도 컸지만 아쉬움도 물론 있다. 일본 측에서는 행사가 무척 성공적이었다며 매년 개최하자고 제의해왔지만 개인이 계속 이어가기에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백 소장은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열자는 제안을 받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여력만 된다면 2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에서 한복 설명회를 개최하고 싶어요. 이번 일본 행사도 한국에서 1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기획했지만 냉랭해진 양국 관계와 비용 문제 때문에 축소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행사 장소도 처음에는 헤이안신궁으로 잡았다가 한복을 알리려는 행사의 본뜻이 왜곡될까 봐 옮겨야 했고요. 무엇보다 연세 드신 교포 할머니들에게 한복을 선물해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워요."

◆전통문화 계승하면서 새로운 감각 접목

백 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한복 패션쇼를 열어 우리 옷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높이는 데 애쓰고 있다. 2009년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아름다운 우리 옷과 즐거운 차(茶) 생활'을 주제로 다례복, 궁중복, 혼례복 등을 선보인 데 이어 20011년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무대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는 스위스'캐나다'코트디부아르 등 11개국 주한 대사 부인들이 모델로 나서 화제가 됐다. 2012년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한 '세계인과 함께하는 한복 패션쇼' 역시 주한 외국대사관'주한 미군 관계자 등이 자국의 전통의상과 우리 궁중복 등을 입고 모델로 나섰다.

"한복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패션 리더들이 한복의 미(美)를 자연스레 알리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공식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어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 대표적이죠. 제가 각국 외교관들을 자주 초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글로벌시대에 한복은 진정한 한류를 알리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백 소장의 한복은 고유의 전통 의복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을 잘 접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고리에는 양장 기술을 활용해 활동성을 높였고, 치마 역시 압박감이 덜해 일상복으로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고객들의 반응이다. 이 같은 디자인 덕분에 지역의 한복 애호가들은 한눈에 '백현주가 만든 옷'을 알아본다고 한다.

"디자이너 스스로 만족해야 고객에게도 부끄럽지 않지요. 그래서 옷을 만들다 보면 가끔 손해를 볼 때도 있어요. 고객 한 분 한 분의 개성을 살리려다 보니 자꾸 욕심이 나서 더 좋은 원단을 쓰게 되니까요. 제 고객 가운데 80% 정도가 서울에서 오시는데 그 이유가 서울에서는 그 가격에 마음에 드는 한복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한복을 격식대로 입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달려가서 조언을 해준다는 백 소장은 요즘 한복 문화에 대해서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한복을 일상 속에서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결혼식장 같은 곳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TV 사극에 나오는 한복에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원래 우리 저고리는 기장이 꽤 길었는데 드라마에는 짧은 기장의 저고리만 보이거든요. 시쳇말로 기방(妓房) 스타일인 셈이죠.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지는 저가의 한복이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소비자들의 미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한복은 불편한 옷이란 오해를 낳고 있거든요."

◆다례복식박물관 건립이 꿈

백 소장이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취미생활이었던 다도(茶道) 때문이었다. 평소 다인(茶人)들이 즐겨 입는 한복을 활동하기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조언해주다가 본격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나서게 됐다. 차와 한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2007년부터 '현명원'(경산시 옥곡동)이라는 차문화예절원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대학에서 교양과목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1980년대 후반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다도를 알게 됐지요. 그런데 한 5년쯤 배웠는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있는 한국차인협회 부설 한국다도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이후 성균관대 생활과학대학원에서 생활예절'다도를 전공했고, 한국차인협회의 다도 정사(茶道 正師) 과정도 마쳤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차분히 차를 음미할 시간이 솔직히 없어요. 집에서는 커다란 머그컵에다 가득 부어서 집안일 하면서 마시곤 하지요."

그의 장래 목표 역시 머지않은 시기에 다례복식박물관을 지역에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시대별 다례'복식문화의 변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할 요량이다. 그래서 틈틈이 옛 유물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딸(32)도 다도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백 소장을 돕고 있다.

"지역 대학에 한복학과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소망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니라서…. 졸업생들의 취업문제 등 여러 걸림돌이 있겠지만 그런 학과가 설립된다면 적극 도울 생각이에요."

그는 화가이기도 하다. 개인전도 몇 차례 열었고, 신인작가 등용문인 '대한민국 미술대상전'에서 2004년과 2006년에 각각 특선,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림을 그릴 때면 마음속의 고민과 잡념들이 모두 사라지고, 무아지경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백현주 한복연구소장=다양한 갈래의 전통 한복과 개량 한복을 선보이고 있는 백현주 소장은 예천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외갓집이 있던 대구로 온 가족이 이사온 것은 1980년이었다. 경북예고 부설기관인 '우봉미술전시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07년 '현명원 차문화예절원', 2009년 한복연구소를 설립했다. 자신의 옷을 입은 손님들이 '사람이 달라졌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자랑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백 소장은 "예천에서 알아주던 만석꾼 집안 출신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적극 후원했던 선친의 업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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