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국제무대 누빈 외교관, 100년 전과 비교한 생존전략
신조선책략/ 최영진 지음/ 김영사 펴냄
부제는 "역사는 어떻게 역전되는가?"이다. 100여 년 전 조선을 통찰하고 100년 후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새로운 역사적 성찰이다.
전쟁의 패자(覇者)에서 무역 패러다임의 수호자로 변신하는 미국, 열강들의 전리품에서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 움츠러드는 국력 속에서 과거 팽창주의의 어두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일본,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 41년간 국제 정치 현장을 누빈 외교관이 한국을 둘러싼 정치문화의 근원을 탐색한 보고서다.
100여 년 전이라지만 정확하게는 120년 전이나 그 이전의 일이다. 19세기 말 한반도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청나라 외교관 황준센(黃遵憲)이었다. 그가 1880년을 전후해서 지었다는 책 '조선책략'은 약육강식의 서양식 패러다임이 급격히 동북아에 밀려들어 오는 것을 정확히 예견했다.
이 책의 제목은 '新조선책략'이다. 19세기 후반만큼이나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정세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저자 최영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주미 대사 등 외교관으로 41년 동안 국제 정치 현장을 누빈 경험을 살려 급변하는 21세기 초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다.
이 책은 패러다임의 전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전쟁 패러다임은 급격하게 무역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었다. 구 패러다임에서 한반도를 구속했던 미'중'일'러의 전통적인 4강 구도도 와해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전환 속에서 저자는 국제 정치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21세기 한국의 변화와 생존법을 제시한다.
대북관계는 대북 인게이지먼트와 대북 억지력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한다. 북한에 대한 전면적 봉쇄는 폭발을 일으킬 뿐이다. 대북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은 철저히 현상인정, 즉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전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북한의 붕괴는 철저히 내부적인 요인에 촉발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갑작스러운 지진처럼 찾아올 수 있는 통일에 대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눈여겨봐야 할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G2시대를 이끌면서 세계 패권을 노리는 신흥 도전자로 급부상했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에 손을 들면서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설을 일축한다. 상호 의존적인 무역 관계가 깊어지기 때문에 경쟁과 협력이 복합된 새로운 강대국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것. 한중관계에서는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서양식 개념이 아니라 민생 같은 동양문명 내에 내재되어 있는 개념으로 접근하라고 안내한다.
한일교류 면에서도 저자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냉철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팽창주의와 군국주의의 어두운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실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 식민 통치를 경험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정서는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관계 속에서 중국을 주목하면서 지렛대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대북관계에서 한일교류까지 넓은 영역을 가로지르면서도 구 패러다임에서 생성된 국민정서, 즉 피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명확한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전쟁의 시대에 한국 역사는 피해의 역사였다. 이런 쓰라린 경험에 의한 피해의식은 아직도 우리 국민정서 속에 강력한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정서와 국민이익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피해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외교로 나아갈 때만 우리는 세계 미래를 설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170쪽. 4천950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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