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그래요, 내겐 꿈이 있어요

입력 2014-01-04 07:30:43

요즘 그룹 '아바'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즐겨 부른다. 차에 CD를 두고 운전할 때마다 틀어 놓고 부르다 보면 기분이 한결 밝아진다. 짧은 해 때문에 우울해지는 기분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순간을 즐기며 살아라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다 보면 때로는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해 더 곤란하고 힘든 상황을 맞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아바가 부르는 곡은 거의가 댄스곡이다. 한 시절의 익숙한 비트가 들려오면 몸과 마음이 함께 반응한다. 음악에 실려 머리 아픈 일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엔 생각할 것이 있으면 그 생각만을 고수하며 집중해서 고민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민거리를 미루거나 잠시 덮어두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20대에는 아바의 노래들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히트곡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에게 아바의 노래는 그저 경쾌하고 경박한 팝에 지나지 않았다. 또 어렸기에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리듬과 비트만을 느꼈다. 가사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사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바는 1972년 결성해서 1982년에 해체된 스웨덴의 4인조 혼성팝그룹이다. 해체된 지 30여 년이 지났다. 이 정도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 마땅한데 그들의 노래는 지금도 뮤지컬이나 영화로 만들어져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도 여전히 뜨겁다. 그들의 노래는 추억의 상품 정도에 그치지 않는 특별함이 있다. 숨 가쁜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에 30여 년이면 충분히 전설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시간이다.

아바현상은 이들의 음악이 한 시대의 단편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사의 보편적 맥락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삶의 여러 가지 모습과 모순들이 떠오른다. 사랑과 추억, 행복과 불행, 선택과 이별, 누구나 겪고 있는 돈 문제 등등 우리들 내부에 응어리진 침적물들을 한 번쯤 뒤흔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아바의 노래는 정서적 진동을 통해 살아있는 자기충족의 시간을 제공한다. 노래들은 하나같이 심각하지 않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할 때도 가볍고 활달한 비트에 실어 춤곡으로 승화시킨다. 세대를 뛰어넘어 공유되는 아바의 미덕이란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 희망과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바다. 요즘 들어 아바의 노래 중에서도 'I have a dream'이 마음에 다가온다. 'I'll cross the stream, I have a dream'(나는 강을 건널 거예요, 나에겐 꿈이 있어요.) 어느 날 문득 이 대목에 마음이 쏠렸다. 20대엔 꿈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이 진부하게 들렸다. 사랑이라는 말만큼이나 식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의례적으로 느껴지던 꿈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귓바퀴에 맴돌고 있다.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의 존재를 믿어요

Something good in everything I see 보는 것마다 장점을 찾아내요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의 존재를 믿어요

When I know the time is right for me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될 때

I'll cross the stream I have a dream 나는 강을 건널 거예요 내겐 꿈이 있어요

강을 건넌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강은 항상 경계에 위치한다. 과거의 나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과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서겠다는 뜻이다. 그 강이 요단 강이든 스와니 강이든 루비콘 강이든 물살을 거스르며 다시 강을 건너고 싶다.

서영처 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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