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이혼·재혼·노름·첩…조선 서민 알려지지 않은 일상

입력 2014-01-04 07:43:40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전경목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고문서 한 장으로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다. 조선은 우리에게 멀고도 가까운 나라이다. 책과 소설에서 항상 접하지만, 상상 속의 조선은 위엄 있는 사대부들과 정절을 위해 목숨 바치는 여인들의 나라이다. 서민들의 일상 따위는 일반적으로 그 상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알려진 바도 없다. 하지만 고문서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풍습과 일상을 알 수 있다.

원래 고문서는 역사학계에서 주목받는 연구 분야가 아니었다. 오래된 도자기를 옮길 때 도자기를 감쌀 신문지가 부족하면 오래된 고문서를 뭉쳐 넣기도 했고, 창고 깊은 곳에서 먼지와 함께 처박혀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저자는 대학 시절 박물관에서 일하던 도중 그렇게 뭉쳐지거나 처박혀 있던 고문서를 보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고문서는 당시 서민들이 기록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조선 시대의 이혼과 재혼 풍습이 어떠했는지, 노름과 관련된 일은 어떠했는지, 또 처와 첩의 차이나 대우는 어떠했는지 등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재현해낼 수 있다. 그 재현을 위해 저자는 놀라운 추리력과 함께 고문서의 내용과 당시의 시대상, 종이의 재질 등 가능한 한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한다.

저자는 아내의 재혼을 허락하는 남편의 수기 한 장, 노름빚 갚았다는 사실을 증빙해달라는 탄원서 한 장을 실마리 삼아 문서를 작성한 사람, 그가 속한 공동체, 당시 시대상을 추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탐정이 추리를 하듯 관련된 인물과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고문서를 깊이 읽고, 뒤집어 보고, 의심하는 해석 과정은 놀랍고 경이롭다. 이 해석이 찾아낸 이야기는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조선의 일상을 한 장면 한 장면 복원한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대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이혼, 노름, 재산 분배 같은 소소한 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이 남긴 목소리는 기존의 역사적 통설을 뒤집기도 하고,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고문서는 역사의 비밀상자처럼 조선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낸다.

또한 이렇게 고문서를 통해 추적한 조선의 생활상은 일반적인 인식과 조금 다르다.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으며, 가난해서 돈을 받고 이혼해 주는 남편도 있었다. 첩이라 해도 그 신분에 따라 대우의 차이가 심했고, 공명첩을 사는 일차적인 목적은 신분 상승이 아니라 군역의 면제에 있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383쪽, 1만8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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