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은 소위 전쟁 세대다. 아버지 히로히토는 침략 전쟁의 개전과 패전을 선언했던 인물이다. 그는 초등학생이던 12세 때 일본의 패전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니 머릿속엔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팔순을 맞은 아키히토는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전쟁을 꼽았다. "다양한 꿈을 갖고 살던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정말 참담하다"는 것이 그의 전쟁에 대한 고백이었다.
아키히토는 1989년 즉위 이후 단 한 차례도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가 야스쿠니를 찾지 않는 것은 그곳에 전범 14명이 합사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후 일본의 왕실 체제 유지는 당시 맥아더 연합군최고사령부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왕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미국은 평화헌법을 조건으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과 일왕 체제의 유지를 눈감아 줬다. 그러니 평화헌법은 일왕 체제의 바탕이 된다. 역으로 평화헌법을 뒤흔드는 것은 일왕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아키히토가 올해 신년사에서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해 우리나라와 세계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아키히토가 인류의 행복을 강조한 것은 일본의 평화헌법 유지에 대한 염원을 담았을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반면 1954년 아베는 전후 세대다.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복역한 인물이다. 아베의 정치 역정엔 극우 군국주의자이자 전범인 외조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베는 신년사에서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제 막 시작했다"고 했다. 평화헌법에 대해 "제정한 지 68년이 지난 지금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정하도록 국민적 논의를 심화해야 한다"며 개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여차하면 자위대를 군대로 바꿀 기세다. 일왕은 인류 평화를 노래하고 총리는 강한 일본을 되찾자며 군비경쟁에 나서고 있다. 정치적 권한이 없는 일왕은 상징에 불과하다.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가진 총리는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등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엔 여전히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지금 일본의 두 얼굴이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