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배달업체 등 우왕좌왕…민원실 견본 여전히 지번
2일 오전 대구 중구청 민원실. 직장인 김모(43'여'대구 중구 대신동) 씨가 '민원신청서 견본'을 보며 혼인신고서를 쓰고 있었다. 주소를 적는 칸이 나타나자 김 씨는 망설임 없이 기존 지번주소를 썼다. 하지만 몇 분 후 김 씨는 작성한 혼인신고서를 버리고 다시 작성해야 했다. 올해부터 출생'혼인'사망신고 등 민원서류를 작성할 때 도로명주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새해부터 도로명주소로 바뀐다는 것은 알았지만 견본에 지번주소로 쓰여 있어 나도 모르게 옛 주소로 작성했다"며 "기존에 쓰던 주소가 익숙해서 그런지 바뀐 도로명주소가 도통 외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멍 난 도로명주소=도로명주소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모든 공공기관에서 도로명주소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지난 1910년 지번주소 체제가 구축되고 104년 만의 변화다.
정부는 2년 동안 도로명주소와 기존 지번주소를 병행하는 적응기간을 두는 등 행정적인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했지만 도로명주소 시행 첫날, 구멍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2일 기자가 찾은 대구 중구청 민원실에 놓인 '민원신청서 견본' 책자에는 옛 지번 형식으로 쓰인 예시문이 들어 있었다. 각종 민원서류를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서도 민원서류를 작성할 때 도로명주소를 써야 한다는 설명이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간 단축을 위해 미리 인터넷으로 서류를 내려받아 작성해 온 주민들은 다시 처음부터 작성해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도로명주소가 익숙하지 않아 지번주소로 작성한 서류를 제출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며 "인터넷으로 바뀐 주소를 검색해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면허증 등을 재발급'갱신할 수 있는 경찰서 민원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구중부경찰서 민원실에는 도로명주소 사용에 내한 안내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민원실을 찾은 주민들은 옛 지번주소가 쓰인 서류를 제출했지만 직원은 도로명주소에 대한 별다른 안내 없이 서류를 접수했다.
중부경찰서 민원실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만 똑바로 쓰면 주소는 전산시스템에서 자동으로 바뀐 도로명주소로 입력되기 때문에 지번주소로 서류를 작성해도 그냥 받고 있다"며 "도로명주소에 대한 설명은 굳이 따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업체 울상=새 도로명주소로 가장 많은 불편을 겪는 곳은 택배'음식 등 배달업체들이다.
소방서, 경찰서 등 공공기관의 경우 신고가 들어오면 도로명주소나 지번주소 중 어느 하나만 불러도 자동전산시스템을 통해 두 주소 모두가 표시된다. 하지만 자동전산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배달 업체는 인터넷을 통해 일일이 도로명주소를 지번주소로 바꾸는 수작업을 하지 않으면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가기가 어렵다.
옛 지번주소와 도로명주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洞) 이름이 아닌 도로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도로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 국채보상로의 경우 동을 넘어 중'동'서'수성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으로 목적지에 대한 위치를 대략 파악했던 배달업체와 택시기사 등은 도로명주소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택배기사 송모(40'대구 달서구 송현동) 씨는 매일 스마트폰을 이용해 도로명주소로 온 택배물품을 다시 지번주소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송 씨는 "택배 물품에 동별 지역 분류 코드를 작성한 다음 배달을 나가는 데 아직 도로명주소에 맞는 지역 분류 코드를 회사에서 만들지 않았다"며 "하나하나 주소를 바꾸다 보니 지역 분류 코드를 작성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모(56'여'대구 동구 신천동) 씨 역시 새로운 주소체계가 반갑지 않다. 이 씨는 "20년 넘게 지번주소만으로 배달을 다녔다"며 "이제는 주소만 들어도 바로 어딘지 알 정도가 됐는데 다시 새로운 도로명주소에 적응하려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안정행정부 관계자는 "아직은 과도기라서 혼란이 많지만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올 한 해 도로명주소 민간 활용률을 45%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