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중국 방문 1천회 이상…각 省·市·자치구에 인맥만 수천명
한'중 수교(1992년)가 되기도 훨씬 전인 1987년 88서울장애인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중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5년간 중국을 드나든 횟수가 1천 번이 넘는다. 중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민간기업인을 제외하고 '제 집 드나들 듯' 중국을 방문,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온 인사는 김한규(73) 21세기 한'중 교류협회장 외에는 없다.
그런 김 회장에게 중국은 한마디로 '음수사원'(飮水思源)과 '관시(關係)의 나라'다. 중국인은 우물물을 마실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고, 한 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간직하고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막후에서 지원하고 1992년 한'중 수교에 앞서 양국 간 수교협상을 막후에서 지원한 이래로 한'중 의회와 정당 교류의 물꼬를 텄고 이어 2000년 21세기 한'중 교류협회를 창립, 중국인민외교학회와 더불어 양국 간 고위급 민간 교류 확대에 헌신해왔다. 그런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중국 정부는 2010년 김 회장에게 '중한우호사자'(中韓友好使者)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수여했다.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 국가주석과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주룽지(朱容基),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과 같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물론 위정성(兪正聲) 상무위원, 리루이환(李瑞環), 자칭린(賈慶林), 텐지윈(田紀雲), 차오스(喬石), 후이량위(回良玉), 리장춘(李長春), 꾸시우리엔(顧秀蓮), 탕자쉬엔(唐家旋), 리테잉(李鐵映), 첸지천(錢其琛), 천빙더(陳炳德), 량광례(梁光烈), 자오난치(趙南起), 천즈리(陳志立), 주량(朱良), 다이빙궈(戴秉國), 왕자루이(王家瑞), 리잔슈(栗戰書), 장바이파(張百發) 등 개혁개방 이후 현대 중국을 움직여 온 중국 고위급 지도자들은 어김없이 김 회장을 만나 한'중 관계 발전의 가교역할을 맡겨왔다.
그는 이런 중국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덩샤오핑은 최고 실권자가 된 후에도 자신에게 고통을 준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천안문에 걸게 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숭배하게 하는 등 포용력을 갖췄다"면서 우리도 덩샤오핑 같은 중국 지도자들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새해 벽두 지난 25년간 중국 정치지도자들과의 교류를 통한 생생한 경험과 깊이 있는 이해를 '김한규, 중국과 통(通)하다'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나는 지난 25년 동안 중국 대륙을 호령해 온 수많은 최고 지도자들과 교류하면서 넓고 깊은 우정을 쌓아왔다. 민간교류였지만 사실상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왔다. 사실 수교 전에는 우리(21세기 한'중 교류협회)의 파트너인 '중국인민외교학회'가 정부를 대신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때도 그들을 만났듯이, 앞으로도 양국관계가 막힐 때면 중국 지도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나에게 중국과 교류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없다.
나는 스스로 중국을 친구로 선택했다. 나는 중국을 믿음과 의리가 있는 나라, 언젠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동반 발전,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21세기 독립운동'을 한다는 자세로 일할 것이다. 우리 협회를 통해 중국의 각 분야 지도자들과 다양한 교류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대한민국을 위한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고 이에 만족한다. 미래의 한'중 관계는 한없이 밝다."
-중국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중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닌데 중국과의 교류는 어떤 일을 계기로 맺게 된 것인가.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중국이 서울아시안게임의 운영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장바이파 베이징시 상무부시장을 파견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막후 파트너가 나였다. 그 후 1987년 초 한국 측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 중국 정부를 설득해서 88서울올림픽에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을 대거 참가시키는 데 일조함으로써 88서울올림픽과 장애인올핌픽이 동서진영 간 스포츠를 통한 화해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장 부시장은 그 후 88올림픽 때 다시 한국에 왔다. 당시 나는 88서울장애인올림픽조직위 실무부위원장이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에 갔다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회지원 요청을 받고 우리 정부가 흔쾌하게 중국의 아시안게임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것이 계기가 됐고 1992년 한'중 수교에도 막후에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중 수교를 공식 발표하던 날, 나는 천시통(陳希同) 베이징 시장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 그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21세기 한'중 교류협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협회가 창립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는 중국 측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00년 10월 방한한 당시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한'중 수교 10주년을 앞두고 한'중 양국의 미래를 위한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며 한'중 지도자급 친선단체를 만들어 양국관계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을 제안했다.
중국 측 파트너로는 중국의 비정부기구인 '중국인민외교학회'가 맡기로 할 정도로 우리 협회 같은 민간외교 채널을 비중 있게 여긴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한'중 교류협회가 탄생했다. 주 전 총리는 전용기 출발을 연기시키면서 협회 창립모임에 참석,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우리 협회는 전'현직 국무총리를 비롯한 행정부의 장'차관급 고위 인사와 국회의장과 부의장, 각 당의 중진 국회의원 등 정치인, 경제계 대표 및 대학총장 등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창립된 다음 해인 2001년 10월 제1회 지도자포럼을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의 고향인 양저우(楊州)에서 개최한 것도 의미심장했다. 양저우는 중국 최고 지도자의 고향이자 신라의 문장가인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 때 첫 관직을 지낸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수많은 중국 지도자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뿐 아니라 각 성'시(省'市)와 자치구 등을 다니면서 만난 지방의 고위급 인사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과 교류해왔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지도자를 알면 중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가 다 보인다.
최고 지도자는 아니지만 '장바이파'(張百發) 전 베이징시 상무부시장은 중국과의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중국을 배웠다. 중국인이 얘기하는 '관시'가 무엇인지, '음수사원'이라는 중국인 특유의 기질을 그로부터 알게 됐다.
장 부시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 앞서 개최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참석,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해 방한했고, 당시 88서울장애인올림픽 대회 조직위 실무부위원장으로 있던 나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장 부시장과는 허물없는 사이가 됐고, 그는 한'중 수교 이전에 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삼성과 현대, 대우 등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는 등 한'중 간 교류 협력에 공이 크다.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지원하는 우리 정부 지원단장의 자격으로 다시 중국을 찾았을 때도 그와 매일 만났다.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 등 최고 지도자와도 깊은 교류를 가졌다. 후 전 주석과는 주석직에 오르기 전인 2인자 시절부터 교류했고 사실 내가 중국을 가장 빈번하게 오간 시기가 후 전 주석이 집권한 지난 10년이었다.
주량 전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많이 접촉한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지금도 양국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친한파 중의 친한파다. 주 전 부장은 1993년 시작된 중국 공산당과 당시 민주자유당 간 정당교류의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한 책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중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찾아보고 나아가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25년간이나 정부가 할 수 없는 고위급 민간 교류를 해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 중국은 앞으로 한반도 통일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은 G2로 성장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야 한다. 중국과 중국 지도자들과 교류해 온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경험한 중국의 본질과 중국인의 속살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한'중 관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 남북통일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 회장은 21세기 한'중 교류협회를 맡기 전까지는 재선 국회의원(13, 14대)과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민자당 총재 비서실장, 총무처 장관 등을 지냈다. 그런 탓에 그를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부나 중국 당국의 요청이 있든 없든 간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양국 간 우호협력의 밑거름과 가교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역할 없는 한반도의 통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과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서명수 서울 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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